한미FTA, 어떻게 볼 것인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1970년대 중반 세계자본주의가 심대한 구조적 축적위기에 빠져든 이후 미국 중심의 선진국 독점자본의 위기 타개책으로 등장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애초에 주되게는, 미국 역시 그 안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를 행사하면서도 최소한 타 선진국들과 협조하는 가운데 지구적 수준의 규범을 준수해야 하는 ‘지구적 제국’ (Global Empire) 건설의 경향으로 나타났다. WTO체제의 출범과, 세계 모든 국가들의 더 많은 개방을 위한 도하의제개발 시도 등이 이 경향에 속한다. 그러나 지구적 제국 건설의 경향은 그간 많은 진척이 있었지만 미국의 요구를 흡족하게 충족시킬 만큼 진척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지구적 제국의 건설에는 수많은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한 데에다가 BRICs와 G8에 대항하는 ‘G21'의 대두 등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여러 움직임들이 대두했기 때문이다. 1999년 시애틀투쟁, 2003년 칸쿤투쟁, 2005년 홍콩투쟁 등 범세계적 대안세계화 운동의 고조 역시 지구적 제국 건설을 저지하는 중요한 힘으로 작용했다.
다른 한편 미국은 1990년대에는 유례없는 호황을 경험했다. 이 호황은 그러나 지구적 수준에서의 한층 더 강화된 금융적 수탈 및 ‘신경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가져온 거대한 과잉투자에 힘입은 것으로 위기로부터의 최종적 탈출을 알리는 것이 기는커녕 보다 심각한 위기 폭발의 조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1990년대에 미국이 경험한 호황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종결된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최소한 타 선진국들의 이익도 아울러 보장하는 가운데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려한 ‘다자주의’ 정책을 버리고, 타국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자국 이익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일방주의’ 정책을 채택하게 되며, 일방주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전쟁의 상시화’ 등을 추구한다. 게다가 중국의 부상은 미국에게 자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으로 인식된다.
위에서 언급한 사정들을 배경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은 200년대에 들어오면서 ‘지구적 제국 건설정책’에서 이전에는 부차적인 정책으로 추구한 ‘미제국(U.S. Empire) 확장정책’으로 급속하게 전환되기에 이른다. 미제국 확장정책은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양자간 협정을 통해 경제적, 정치적, 군사안보적 관점에서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국가들의 경제를 미국경제에 완전히 통합시키고, 이를 토대로 이들 국가들과 그에 상응하는 확고한 정치군사적 동맹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미국에 의하면, 미국이 최고의 군사력과 최대의 시장을 가진 명실상부한 최고 강국이므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당사국에게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 포괄적인 '국익'의 증진을 안겨주는 '특권'이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은 그 '특권'을 차지하려는 나라들 간에 경쟁을 붙여 자신이 선택하는 특정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이를 통해 이들 국가들을 이른바 '자유화 국가 연합(coalition of liberalizers)'에 참여시키는 것을 미제국을 확장시키는 기본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과의 FTA 체결은 미제국으로의 실질적인 경제적-정치군사적 합병을 초래한다. 그런데 노무현대통령에 의하면, 한미FTA 추진은 미국이 강제해서가 아니라, 미국과의 FTA체결이 우리 경제에 매우 큰 이익을 안겨줄 것이므로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한국정부는 미국에게 FTA 체결을 애걸했고, FTA 협상대상국으로 ‘간택’되기 위해 ‘의약품 가격 인하조치 중단’,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완화’, ‘쇠고기 수입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와 같은 미국이 제시한 4대 선결조건을 사전에 충족시켰다. 거기서 더 나아가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해줌으로써 FTA체결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전제조건을 충족시켜 주었다. 한편,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과의 FTA 체결이 미국에게 많은 경제적 실익을 안겨줄 것이라는 점, 중국포위 전략을 추구하는 미국에게 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라는 점, 중국과 한국이 정치적-경제적으로 더 이상 가까워지는 것에 막아야 한다는 점, 한국이 미국과의 FTA 체결에 열성적으로 나서고 전제조건들을 충족시키는 데에 적극적이었다는 점 등이 미국이 한국을 간택한 이유라 하겠다.
미국과의 FTA 체결은 미제국으로의 실질적인 합병을 초래하기 때문에 당사국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한국정부가 한미FTA 체결에 목을 매달고 있는 사정을 고려할 때,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그대로 둔다면 한미FTA가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맺은 FTA들에 비해 가장 강도 높은 FTA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미FTA 체결은 한국사회 및 한국의 대외관계 등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먼저, 한미FTA 체결은 미국시장에서도 이미 일정한 경쟁력을 확보한 4대재벌을 비롯한 대자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자본들이란 이미 미국계 자본들과 융합되거나 미국자본에 종속되어 있는 자본들이다. 이들 자본이 얼마나 이득을 보는가에 상관없이 한국경제 전반에 대한 미국자본의 지배가 공고화되고, 한국사회 전체가 미국식 시장경제논리에 따라 철저히 재편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농업과 수많은 중소자본들이 몰락하고 늦든 빠르든 물, 에너지, 교육, 보건의료 등을 포함한 모든 공공부분의 사유화-해외매각 등이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소수상층을 제외한 전국민의 노동자화와 노동유연화가 극단적으로 추진됨으로써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빈민화 등이 결정적으로 촉진될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과정은 사회양극화과정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나아가 교육, 문화, 방송, 미디어의 많은 부분이 미국자본에 장악 당함으로써 정신적-문화적으로도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한미FTA의 체결을 통한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주권의 실질적인 상실은 그 체결로 득을 볼 소수상층을 제외한 전 국민들에게 역사상 유례없는 심대한 재앙을 안겨주는 일이다. 또한 한미FTA의 체결은 한국이 미국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립성을 지닌 아시아경제권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고, 아시아경제권을 미국권과 중국권으로 분열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른 한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허용은 한국군을 아시아 전체를 겨냥하는 주한미군의 하위동맹군으로 확고하게 편입시키고, 주한미군 기지를 중국포위와 북한에 대한 예방적 선제공격을 위한 전초기지로 만든다. 이 과정은 남북한 평화체제의 구축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동시에 한미일 군사동맹에 대항하는 중국-(러시아-)북한과의 새로운 군사동맹 관계 수립을 재촉할 것이다. 한국의 미국으로의 실질적인 합병은 북한의 중국으로의 실질적인 합병을 재촉함으로써 남북한 분단체제의 극복과 자주적 평화통일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이처럼 한미FTA 체결은 민족의 관점에서나 민중의 관점에서나 우리 국민이 선택할 길이 아니다. 그 체결은 미국자본과 융합된 소수 대자본의 요구이자, 미국으로의 합병을 찬양하는 숭미적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요구이다. 그 체결은 신자유주의 반대의 길로, 탈미의 길로 나아가려는 새로운 흐름에 대한 친미수구세력의 최후의 반격이자, 그 반격의 승리를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그들의 최후의 비책이다. 그리고 '미국에 대해 할 말이 있으면 하겠다’고 한 노무현대통령이 이젠 친미수구세력이 주도한 이 반혁명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한 그는 민중탄택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한미FTA를 저지하고, 이에 기초하여 탈미의 길로, 자주적 평화통일의 길로, 미국에 대해 상대적 자립성을 지닌 아시아 건설의 길로, 민중생존권이 보장되고 각국의 문화적 정체성 등이 보존되는 가운데 세계 각국의 인민들이 호혜적인 협력을 증대시키는 대안적 세계화의 길로 나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 책임을 떠맡는 일에 주저하지 말자!
김세균 / 한미FTA저지 교수학술단체 공대위 상임공동위원장,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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