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와 동물들의 복지권 요구 반란
‘돼지독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던 ‘신종플루’가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창궐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 정부와 국민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큰 사회파장을 불러왔던 ‘광우병’과 또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조류독감’ 그리고 이번에 돼지독감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과 그 내면을 살펴보자면, 이것이 ‘동물들의 반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 돼지, 닭은 육축 가운데서도 중심이 되는 가축들이며 상용 식육의 거의 전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알려 진대로의 상식을 가지고 살펴보면, 광우병은 소들에게 ‘소의 부산물사료’를 먹인 결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소가 소를 먹고 미친 것’이라는 정의입니다. 또 조류독감으로 떼죽음을 당해야 했던 양계장의 닭들도 이미 익히 잘 알려 진대로 그 ‘창살 많은 감옥생활’의 결과 면역력이 약해진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돼지독감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엊그제 국민일보(6363호)를 보니 “돼지·닭에게도 자유를! ... ‘동물복지권’어디까지 왔나” 라는 제목으로 고통 받는 돼지와 닭의 현주소를 다루었습니다. 한마디로 오직 좁고 어두운 곳에서 모든 본능을 거세 당 한 채 그 ‘몸뚱어리’가 키워지고 있는 돼지, 일어서거나 날개조차 펴볼 수 없는 창살 속에서 ‘알 낳는 기계’로 강제된 닭들을 취재(?)하면서 식육동물들의 권리, 즉 ‘동물복지권’을 조명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육축들이 병들어 있고 사람은 그 ‘병든 고기’를 먹고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육식문화 속에서 사람이 건강할 수 없고 식육동물의 사육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 복지권을 회복시켜 줄 때에 사람과 동물이 다 같이 건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백번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과나 호박 같은 과실 채소류에서는 병들고 상한 것들을 얼른얼른 골라내어 버리지마는, 우리 앞 불판 위에 놓여진 소, 돼지, 닭고기는 썩어서 냄새가 진동하기 전에는 그 건강상태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너도 나도 입맛에 따라 부위 별로 구분하여 맛있게 먹고는 있지만, 그 동물이 키워지고 고기가 만들어진 과정을 한 번 돌아본다면, 우리가 먹는 고기 들이 얼마나 심한 스트레스로 ‘병들어져’ 있는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병든 고기’를 먹으면서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은 바로 어불성설입니다. 얼마 전 웰빙의 물결이 밀물처럼 다가왔지만 지금은 썰물처럼 나가버린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만, 웰빙이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건강한 식품을 먹고 건강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작금의 시대에 시장과 수퍼에서 먹거리 장보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웰빙’이란 너무나도 요원합니다. 육류는 이미 말한 바대로요, 과일 채소도 거의 모두가 거대한 비닐하우스 속에서 온갖 농약을 뒤집어쓰고 자라난 것으로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 한 번 맞아 보지 못하고 햇빛조차도 마음대로 쬐이지 못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농사 진 것은 내 자식에게는 안 먹인다.”라는 말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닌 지는 벌써 오래입니다.
진정한 웰빙은 ‘자연에서 얻어진 것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산과와 산채를 먹으며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최적의 조건이겠습니다만, 우리 모두 그렇게 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 이미 너무 깊게 들어와 있지요. 그렇다면 완전한 ‘자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연스러움’만큼은 우리가 이루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바로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모든 이들의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건강’을 외치며 갈구하지만 그 외침을 한 순간에 잠재우는 것이 바로 ‘돈’입니다. 건강을 해쳐가며 돈을 추구하는 사람은 많지만, 건강을 위해서 돈 벌기를 일부러 멈추는 사람은 매우 드문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건강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오직 돈벌이를 위해서 동물에게 가하는 이러한 고통은 고스란히 우리들의 건강을 잠식하는 독이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돈벌이를 위한 조건적 일방학대라 할 수 있는 이러한 행위들은 놀랍게도 ‘잘 사는 나라’ 즉 선진국 일수록 더욱 심한데 말하자면, 더욱 효율적으로 고기와 알을 얻을 수 있다는 ‘선진시스템’이라는 것이 바로 동물들에게는 ‘지옥시스템’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의 옛 시골풍경 속에 뒷마당 쪽 돼지우리에서 푸-푸- 소리를 내면서 늘어지게 자고 있다가 가끔씩은 마당 산책도 하곤 했던 돼지들이나, 앞마당 뒷마당을 가리지 않고 또 논이며 밭이며 장독대까지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면서 모이를 찾아 먹던 닭들의 모습은 ‘천국의 행복한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오직 낮은 생산 단가로 많은 이익을 얻고자하는 사람들의 욕심은 동물들에 대한 ‘학대’의 대가로 우리는 각종 무서운 질병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즉 동물들의 말없는, 그러나 한을 품은 ‘복수전’입니다. “그래 너 내 고기 먹고 한 번 죽어봐라.”고 표현 하면 너무 살벌한가요? 우리가 참으로 동물들의 ‘복지권’을 배려하지 않는 한 이와 같은 악순환은 계속 될 것인데 거기에서 불리하고 온갖 피해와 폐해를 더하여 가는 쪽은 바로 사람입니다.
“돼지에게 무슨 권리를?” 하면서 속 편하고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즉, 돈 되는 것은 알지만 몸이 병들어가는 것은 모르는 것이지요. 건강은 나 혼자만의 관리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이웃과 더불어 함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웃의 범주에 소와 돼지와 닭 그리고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살리는 이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동물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 나라의 민족성을 알 수 있다.” 라고 말한 사람은 간디입니다. 당신은 동물을 어떻게 대합니까? 애완동물을 넘어서서 우리들의 소중한 먹거리가 되는 동물들에게도 ‘복지권’을 인정하고 살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건강함’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09-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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