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함
교만(驕慢)이란 ‘잘난 척하고 뽐내며 건방지고 남을 업신여기는 모양’ 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못된 것은 다 들어가 있지요. 그래서 사람이 품지 말아야 할 가장 큰 악한 모양은 바로 ‘교만’입니다. 이것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사람의 자력으로도 타력으로 다스려지지 않고 결국에는 패망의 안내자와 인도자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교만한 사람들은 많이 등장을 합니다만, 그 중에서 돌이켜 겸손하게 된- 또는 그렇게 되어 진 사람들의 이름과 예는 아주 적습니다. 반면에 그 교만이 결국에는 자신을 망하게 한 예는 아주 많지요. 그러기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교만은 자신은 물론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까지도 망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교만하여지는 이유와 원인으로는 우선 ‘없다가 있게 된 사람’을 꼽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돈, 지위, 지식 그리고 권세 등등인데 바로 가난하다가 부자 된 사람, 무식하다가 유식해진 사람, 낮은 자리에 있다가 높아 진 사람과 그리고 못 생겼다가 잘 생겨진 사람... 등등이 바로 ‘없다가 있게 된 사람’들입니다.
잘 살펴보면- 그 중에 ‘뭘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잘 된 것이고 좋은 일들이 있어진 사람들입니다. 복된 일이고 감사한 일들이지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교만이란 나쁜 일, 궂은 일들이 만들어내는 모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좋은 일, 기쁜 일들 속에서 쉽게 생겨지고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누가 선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주의 하라.”고 주의와 경고를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잘 나갈 때 조심해-”라고 하는 것과도 일맥 합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잘되어지고 있는 때에는 꼭 나쁜 것이 끼어드는 것일까요?
대(大)문호톨스토이는 자신의 단편에서 ‘행운의 여신과 불행의 여신은 꼭 함께 다니기 때문에 어느 한편만 불러들일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대로 인정을 한다면- 과연 그렇듯 잘 되는 것을 잘 되는 대로 내버려 두지 못하고 꼭 나서서 ‘딴죽’을 거는 일들- 즉, 행운이 이루어질 때 ‘코를 풀어 놓으려고-’ 기회를 노리는 그 무엇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바로 선(善)한 것을 시기하여 망치려하는 악(惡)한 영(靈)의 횡행(橫行)이며 전횡(專橫)입니다.
곧, 잘 되어진 일을 다시 이전모습으로 돌려 버리려는- 더 하여 아주 망하게 해버리려고 사람의 마음속에 불러일으켜주는 악한 영의 작당과 술수가 바로 교만(驕慢)입니다. ‘좋은 모양’을 기어이 ‘나쁜 꼴’로 만들어 놓으려고 포달을 떠는 것이지요. 그래서 좋은 일로 잘 되어진 사람의 심중에 불일 듯 일어나는 교만의 마음을 물리치지 못하면- 그 모든 좋은 것들은 모두 다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리고 말게 되면서 개펄 가운데 주저앉게 되어 버리고야 맙니다.
그렇듯 어렵고 힘들게 그리고 수고하고 땀 흘려 얻은 모든 복됨과 공로와 상급과 영예로움을 완전히 ‘없었던 일’로- 도리어 ‘그것으로 망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교만이라는 마음의 괴물이므로 우리 모두는 이것이 심중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아주 작은 교만의 겨자씨 같은 것일지라도 날마다 털어내고 집어내기를 거듭하는 것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죽순(竹筍)과 옥수수만 잘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은 그 보다 백배 천배 잘 자라는 것으로 잠시잠깐 한눈을 파는 것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늘 내가 교만하여 질까 긴장하여야 하는데 성도들은 갑절이나 더욱 그러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큰 ‘복(福)됨’으로 항상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5-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