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우는 밤
분명히 “귀뚜라미 우는 밤”이라는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 ‘가을밤’이었던가...? 벌써 반세기를 훌쩍 넘겨버린 그때... 제가 초등학교 시절 속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귀-뚜라미가 또르르 우는 달밤엔... 멀리 떠나간 친구(동무?)가 그리워져요...’
뒷부분은 잘 생각이 아니 않고, 또 우리 곡이었는지 번안된 외국 곡이었는지는 더 잘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그 노래를 좋아해서 학교를 오고가며, 툇마루에 앉아서, 숙제를 하면서도 흥얼흥얼 불렀던 기억만큼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혹 지금도 여전히 있는가 하여 인터넷과 동요집 등에서 찾아보았지만... 역시 없군요... 약간은 아쉽고 허전한 마음입니다.
그 노래뿐만 아니라 그때에 불렀던 ‘방울새야 방울새야 쪼로롱 방울새야-’ 하던 노래와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 갑니다-’ 하던 노래들, 그리고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와 ‘니-나니 나니나-’ 하던 가사가 들어있던 ‘옥수수 하모니카’ 같은 노래들은 이제는 거의 들어 볼 수 없고 초등학교 아이들의 음악교과서에도 더 이상 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긴, 이제는 더 예쁘게 잘 만들어진 동요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까요...
가을이 되고 밤이 깊어가니 사방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더욱 많아집니다.
“또르르... 또르르...”
새로 나온 귀뚜라미 노래들 가사 속의 의성어들 가운데는 “귀뚤-귀뚤-” 이라고 된 것도 있고 “차르르- 차르르-”라고 되어져 있는 것들도 있는데 어릴 적부터 들어온 것이라서 그런지 저에게는 지금까지도 오직 “또르르- 또르르-”가 정답입니다. 허허. 이렇듯 해가지고 주변이 어스름하여지기만 하면 마치 기다리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집 안과 집 밖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울어대는데 아마 이곳이 산골마을 이라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 왕십리 꽃재 언덕 집에 살적에도 밤만 되면 “또르르- 또르르-” 부엌에서 울곤 하여 엄마는 주무시다가도 부엌으로 통하여진 작은 쪽문을 툭-툭- 두어 번 치시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잠시 “뚝...” 멈추기는 하였지만 조금만 있으면 다시 “또르르- 또르르-” 그러면 또다시 툭-툭- 그러기를 몇 번까지 반복 했었는지... 저는 스르르 잠이 들곤 하였지요.
“충-성-!!” 군대를 가서 보초를 서고 있을 때에도 철조망 아래서 역시 “또르르- 또르르-” 하더니만, 강남 역삼동 셋방에 신혼살림을 차렸을 때도 또 또르르... 임지를 따라 안양 비산동으로 살림을 옮겼는데도 또 또르르... 그리고 지금 강원도 산골마을 이곳 황둔찐빵마을에 와서 십 여 년이 지났는데도 또... 그렇게 한 40년 가까이 흐르면서 두 아이를 낳아 장성하도록 키웠는데도 여전히- 어제는 저 창문 밖에서, 오늘은 천장 쪽 어느 틈새에서 또르르- 또르르- 그래, 귀뚜라미야 날 따라 다니는 것이냐 허허 하고 웃어 봅니다.
노랫말처럼 울음소리일까 아니면 노랫소리일까... 날개를 서로 부딪쳐 내는 소리라든가... 다리로 날개를 긁어내리는 소리라든가... 아무튼, 저마다 특유의 소리를 내는 곤충들은 많이 있지만, 귀뚜라미의 소리는 사람들에게 좀 특별한 것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우선은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 기거하는 곳이라면 언제나 그곳에 함께 동거자로 있기 때문에 익숙해진 소리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어릴 적부터 듣게 되고 또 그렇게 들어 왔기에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리는 ‘아련한-’ 소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인데- 저 역시 지금도 서산마루에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면 들려오는 “또르르- 또르르-” 소리로 인하여 무엇인가 정겨웠던 지난 장면들이 수동 아닌 자동으로 떠올려지곤 하고... 그러기를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새벽기도 시간- 말씀을 전하는 시간에도, 기도를 하는 중에도 강단 주변 어디에선가 또르르.. 또르르... 귀뚜라미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습니다. 조용한 산골마을의 새벽 그리고 작은 교회 예배당 안이라서 더욱 크게 울리는 것 같습니다.“너... 정말, 울 때가서 울어야지.” 그리곤 ‘아마도 저 스피커 뒤 아니면 강단 의자 아래에 틈바구니에 있는 것이겠지, 너 조금 이따가 기도시간 끝나고 보자...’ 그렇게 벼르다가 드디어 잡았습니다. 이놈을 어떻게 혼내 줄까...
“아빠, 죽일 거예요? 죽이지 마세요.”
손에 귀뚜라미를 들고 일어서는 저를 본 큰 딸 아이가 약간은 다급해하는 목소리로 한 말입니다. 아이도 벌써 ‘귀뚜라미 소리’에 익숙하여져서 정이 들어 버린 것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죽이긴... 밖으로 내 보내려고 그러지...”
창문을 열고 풀숲에 놓아 주었습니다. 그래, 귀뚜라미야 너는 그 또르르- 또르르- 소리 하나만으로 2대에 걸쳐 사랑을 받고 있구나... 휘영청 달이 뜨는 가을밤 마다 어쩐지 허전한 마음들이 있는 창가로 다가가서 너의 소리를 들려주려무나... 또르르- 또르르- 비록 한결 같은 단선율이기는 하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어떤 음악보다도 위로가 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추억의 명장면으로 달려가는 통로를 열어주기도 하는 소리가 되기도 하기에..... 날이 새면 우리 집 창문가의 거미줄도 다 치워 놓으마- 단, 방에는 들어오지 말고...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5-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