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피 디스켓
“근데... 이게 무슨 그림이예요?”
응? 정말이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를 잘 사용하지만 각종 프로그램 속의 ‘저장 아이콘’이 무슨 그림인 줄 모른다고 하더니만, 바로 ‘플로피 디스크’ (이하 플로피)그림입니다. 이제는 DVD라든가 USB 아이콘을 만들어서 사용하여야 시대에 맞는 것 같습니다만, 아직까지는 플로피 시대의 사람들이 작금의 컴퓨터 세상의 한 부분을 여전히 잡고 있다는 반증일까요? 아무튼 컴퓨터를 켜고 그 아이콘 도안을 볼 때마다 ‘플로피 디스크’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향수가 폴-폴- 살아나옵니다.
“일반적으로 플로피 디스켓은 기록밀도에 따라 2D, 2DD, 2HD 등으로 분리하고, 크기에 따라 5.25인치, 3.5인치 등으로 분리하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디스켓은 2D와 2HD이며, 2D 1매에는 약 36만 자(360KB)를 기록할 수 있고, 2HD에는 120만 자(1.2MB)를 기록할 수 있다...”
이동식 저장매체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플로피 디스켓에 대한 오래 전 설명문구입니다. 지금의 DVD나 USB 또는 ‘테라바이트’시대로 접어 든 컴퓨터 하드의 저장용량을 지구의 크기에 비하면 플로피 디스켓의 그것은 바닷가의 모래알 한 종지 정도이지만, 저만 하여도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저장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즐거웠던 세대입니다.
와르르- 밀물처럼 나왔다가 우르르- 썰물처럼 들어가 버리는 모양으로 한 시절을 풍미하였다가 사라져 버린 ‘세진 컴퓨터’를 기억하십니까? 각 일간지 마다 전면 혹은 반면을 사가지고 대형광고를 마구(!) 싣는 것으로 과감한 배팅을 거듭하던 무렵의 선전 문구를 보면 “신제품 출시... 타사의 추종 불허... 하드용량 400메가바이트...”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400MB-!! 허허 그때는 와- 놀라웠지만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은 400MB로는 작은 게임 하나의 운용도 감당하기 힘든 형편이 됐지요.
이제는 플로피를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도 사라진지 오래 되었지만- 웬일인지 휙- 버리기 아까워서 모아 두었던 플로피들을 가끔씩은 이것저것 상자들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보게 되는 수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그 알록달록한 색깔들을 보고 있자면-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되면서 “저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새삼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그 속에 있는 자료의 대부분 플로피 시대가 퇴장을 할 무렵에 거의 모두를 CD로 옮겨 놓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혹시 내가 깜빡 잊어버리고 옮겨 놓지 아니한 ‘그 무엇-’ 이 있지는 않을까? 그래 있을지도 몰라... 애써 기대하는 마음이 되면서 손에 들고 만지작거려 봅니다.
그러나 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그것을 꺼내 보거나 옮기어 줄 기계장치가 없는 현실이 되었으니- 그냥 그렇게 가끔씩 옛 생각을 떠올려주는 추억의 물건으로만 내 곁에 머물다가 언젠가는 다 없어져 버리고 말겠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어쩐지 휴- 한숨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데- 그 플로피들을 둘러싼 지난 시절의 영상들이 순서도 질서도 없이 ‘놓친 풍선’처럼 둥실 둥실 마구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 정겨운 빨강 노랑 파랑의 플로피 디스크들... 오래 전 자전거 행상 풍선 장수아저씨들이 수소가스통에 연결하여 쉭-쉭- 불어 부풀려 주던 풍선들의 알록달록 색깔들과도 같아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저장매체 플로피 디스크... 어쩌면 사람의 머릿속 뇌의 기능과도 같구나... 보고 들어 알게 된 것을 차곡차곡 쌓아놓고는 그것을 꺼내어 시험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하는데- 또 옛날의 곳들도 찾아가 보게 되지 알았던 얼굴들과 아쉬웠던 얼굴들과 장면들도 다 그 속에 있고... 그래서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보니 그것을 ‘꺼내보는 장치’들은 이제 다 노쇠하여져서 우리 동네 백수(白壽)의 어떤 어르신 말씀처럼 응? 그랬던가? 아니 저랬던가? ‘깜빡 깜빡’하게 되는구나...”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나를 중심하여 기억하게 되고 그것을 ‘추억이라는 이름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놓게 되는데- 나의 창고가 아니라 ‘남의 창고’에 들어 있는 ‘나의 모습’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면 쯧-! 또는 아이쿠-! 하는 심정이 되어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가 밀려오는 것들도 많이 있지만- 그 중에는 지금도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흐뭇하여 “히히히-”하고 환갑 나이에 안 어울리는 바보 같은 웃음소리를 내게 하는 것들도 또한 많이 있어서 ‘추억의 밥상’은 늘 풍성합니다. 과연 “지난 것은 아름답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때그때 스캔하여 넣어 둔 여러 사진들과 각종 예식의 순서지들 그리고 성적표와 증명서들도 있고, 숙제로 작성한 리포트와 일기(日記) 메모들... 비록 시대에 맞게끔 되어 진 장치들과 저장 매체들로 거의 모두 복사되어 옮겨져 있기는 한 것들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거기에 남아 있으면서 이제는 ‘원본들(!)’로 격상되어진 것들을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아직도 거기에는 많은 비밀들이 간직되어 있는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 어쩐지 어릴 적 함께 콧물을 닦아내며 즐거웠던 내 친구와도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렇듯 한 동안 손에 들고 바라보다가... 후-후- 먼지를 불어내고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곱게 넣어 둡니다.
그래... 사람들은 이제는 아무 쓸모없게 된 것들이라고 말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 손으로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허허. 이렇게 아직도 지난 시절의 모양들에 묶여 여전히 징징대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바라보니- 쯧-쯧- 나이가 환갑이면 뭘 하나... 반세기 전 자주 들었던 생전의 어머니 음성이 이렇듯 꿀밤 치듯 놀래 켜 줍니다.
“어이그, 너는 언제 철들래-!!”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5-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