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모처럼 우리 가족 네 식구가 함께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요즈음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국제시장’입니다. 제목으로 보아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삶의 모양과 애환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시대 전을 살았던 우리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모습을 압축하고 농축해 놓은- 그래서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마치 넌 픽션 다큐 기록영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6.25 동란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고 철수를 하여야만 했던 연합군의 ‘흥남철수작전’ 장면부터 시작을 하는데 그때에 열 살 정도였던 사람이라면 저 보다는 십 몇 년 연배로서 큰 형님뻘이 되겠습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고 부산 국제시장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게 된 주인공 ‘덕수’는 흥남부두에서 헤어질 때 들은 아버지의 외친- 결국에는 그대로 유언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당부 말씀에 따라 한 가정의 어린 가장이 되어 뼈가 녹고 몸이 부수어지도록 가족 부양에 혼신을 다합니다. 전쟁이 끝났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이어지는 ‘파독 광부 간호사’들을 현재로 보여주는 비참하고 안타까운 모습들... 다시 또 이어지는 월남 파병... 오직 돈을 벌고자 막장과 전쟁터를 마다 않고 뛰어 다니다가 불구가 되기도 하는 비참함과 처절함을 영화는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80년대- 이산가족찾기의 열풍이 불어서 흥남철수 당시 손을 놓친 여동생이 어찌어찌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그래서 한국말을 다 잊어버리고 미국인 남편과 살고 있는 미국여인이 되어있고... 그래도 혈육을 찾은 기쁨으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만 그대로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려 본 것이 언제였던가... 월남전에서 돌아온 남편을 반가움에 끌어안지만 그때 중심을 잃고 쓰러진 남편 옆에 떨어져 있는 목발, 그리고 그 다친 한 쪽 다리를 고정시키며 철커덕 소리를 내고 있는 철제 부목을 보며 아내가 오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리가 왜 그래- 다리가 왜... 다리가 왜 그래- 왜-!!”
그래, 비둘기 부대를 시작으로 맹호, 청룡 같은 전투 부대들이 전국민적 성원의 열기를 힘찬 배웅의 노래로 들으면서 떠났고 그들이 혁혁한 공로를 연일 계속 세우고 있다는 소식들을 ‘대한늬우스’를 통하여서 보고 듣고는 하였지만, 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다치고 불구가 되어 돌아왔었던가... 지금까지도 ‘살을 도려내는 것 같다’는 통증을 이어가고 있는 ‘고엽제’ 피해자들은 또 얼마나 많구... 정말 그들은 후대를 ‘잘 먹이고 잘 입히기’ 위하여 오직 ‘희생’하였고 또 ‘희생’되었습니다.
백발의 노인이 된 덕수는 자신이 가르쳐 준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는 손녀의 모습에 흐뭇한 얼굴로 박수를 치며 박자를 맞추어 주지만 쯧-쯧- 한 결 같이 혀를 차며 자신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자식’들을 뒤로 하고 슬며시 일어나서 건넌방으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습니다. 그 방 한 쪽 벽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초상을 바라보니 눈보라 속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과 가족을 당부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때 덕수는 ‘늙은 어린아이’가 되어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투정도 부립니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나... 이만 하면 잘 살았지요...? 아버지 부탁하신 말씀대로 잘 살았지요...? 근데... 저 무척 힘들었거든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끔 몰입을 시키는- 또한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젊은이들에게도 당시를 마치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현재처럼 생생한 느낌으로 눈앞에 펼쳐 보여주는 주인공 ‘덕수’역 배우 ‘황정민’의 연기가 훌륭하고 놀랍습니다.
저는 전후세대로 6.25를 ‘현재’로는 겪지 않았기에 흥남부두의 매서운 눈보라는 마음으로만 그 냉기의 온도를 측정하여 보지만- 이른바 ‘베이비붐’ 시대의 선두주자로서 전쟁직후의 가난함의 고통과 비참함 속에서 몸부림치던 악다구니의 여러 모양들, 동사무소 앞에서 하얗고 파랬던 쪽지를 쥐고 밀가루 배급을 기다리던 대열 속의 어머니 얼굴, 누런 편지 봉투 속에 홉으로 담아 팔던 쌀... 그리고 4.19의거, 5.16군사혁명으로 이어지는 격변, 파독광부와 간호사 모집으로의 떠들썩함, 그리고 길을 걷다가도 애국가만 나오면 멈추어 부동자세를 하곤 했는데 그때도 서지 않고 냉냉거리며 지나가는 전차를 ‘애국심에 불타는- 눈으로’ 째려보았던 기억들도 있습니다.
‘귀신 잡는 해병대-’ 또 “맹호부대 용사들아~”하던 노랫소리 그리고 월남전에 지원하여 훈련까지 받았지만 종전으로 꿈(?)을 이루지 못한 형님의 아쉬운 얼굴, 거리에서 골목에서 들려오던 “새벽종이 울렸네-”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청소년 시기를 보냈으며 월남전 종전 다음 해에 입영열차를 타고 논산훈련소로 달려가서 목이 터지도록 “충-성-!!”을 외치며 M1 소총, 카빈소총, 그리고 (영화 속 ‘덕수’형 같은 이들의 피의 희생에 의한 대가로서-) 그 즈음에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M16으로 훈련을 받은 1270군번의 세대이니, 해방세대부터 지금까지를 아우를 때면 그 ‘중간쯤’ 되는 위치에 서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잘 보았냐? 한 시대 전의 아버지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라는 자리를 감당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영화가 끝날 때 눈물 흘린 자국을 열심히 닦고 있는 아이들에게 제가 한 말입니다. 거기에 저도 슬쩍 끼워 넣으면서 말이지요. 그래요 그렇듯 생사를 넘나드는 절체절명의 시대를 산 아버지들 그리고 그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지만 여전히 황무한 맨땅에 서야만 했던 어머니들 그리고 그렇게 고생하던 그들의 삶의 현장들 속에서 손가락을 물고 바라보며 미력이라도 보태야 했던 나의 세대들...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잊혀져가는 장면들이 되기는 할 것이지만, 불과 몇 십년 전에 지금의 사회를 만드는 초석으로 산화하였던-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제는 ‘뒷전 늙은이’가 되어 ‘건넌방의 덕수’처럼 혼자 아닌 혼자가 되어 버린 이들의 빛바래져가는 숨은 공로들을 기려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덕수형’들의 옷자락을 뒤에서 부여잡고 혹시라도 그 손을 놓칠까 열심히 따라 살던 우리들... 그리고 그 시대 아버지들의 눈물겨운 모습들이 지금의 아이들의 마음속에 그 고마움을 상기시켜 주면서 자리매김 되어지는 것 같아 흐뭇한 마음으로 영화 끝에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턱까지 흘러내린 눈물을 누가 볼까 하여 재빠르게 슬쩍 훔쳤습니다.
그러한 와중에서 교회들을 향한 핍박은 또 얼마나 심하였던가... 언젠가 누군가가 그러한 험난의 시대를 살아온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며 생명까지 기꺼이 내어놓았던- 그래서 온갖 환난과 고통 중에도 아버지 ‘덕수’ 같은 모습으로 가정과 교회를 이끌었던 이들의 당시 모습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국제시장’에 이은 ‘국제교회’ 같은 영화도 기대해 봅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