쏙 빼닮은 얼굴...
지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언젠가 야외에 나가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 옆에 웃으면서 서있는 제 얼굴이 저 어릴 적 흑백 가족사진 속에서 제 뒤에 서서 저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놀라울 정도로 쏙 빼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 51세- 그리고 제가 아내와 찍은 사진의 날짜를 보니 2006년... 제가 51살 때네요...
어머니 생전에 하신 말씀에 의하면 그날 아침 아버지가 갑자기 “가족사진을 찍자”라고 서두르셔서 부랴부랴 새 옷들로 차려 입고 우리 다섯 식구가 동네 아래 쪽 시장통 모서리에 있는 사진관으로 가서 찍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 이듬해에 질환으로 돌아가셨지요. 당신의 삶의 마름의 시간을 감지라고 하셨던 것일까요... 제가 6살, 형이 10살, 여동생이 4살 때인데 ‘쉰 한 살의 가장’은 그때까지 8.15해방- 6.25동란- 4,19의거- 5,16혁명 등의 격동과 격변의 세월들을 함께 살아 온 아내와 오그르르 어린 삼남매를 데리고 가서 펑-!! 하는 화약통(!) 조명 빛을 번쩍 받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로부터 45년... 저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언젠가 소풍을 나가서 아내와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가 바로 그 ‘흑백 사진 속’ 아버지의 나이와 같은 쉰 한 살 때였군요... 이제는 제 나이 59살... 그것도 두 달 남짓 후면 60세... 아버지는 살아보시지도 못했던 나이를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시절 아버지의 모습의 단편 조각들을 애써 떠올리며 퍼즐처럼 맞추어 봅니다.
다시 한 번 사진 속에 미소 짓고 있는 ‘나와 얼굴이 꼭 닮은-’ 쉰 한 살의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버지가 나인지 내가 아버지인지- 괜스레 두 얼굴을 한데 뭉뚱그려서 휘-휘- 휘저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쉰 둘- 52세 나이로 돌아가신 아버지... 제가 살아보니 쉰둘이란 나이는 참으로 ‘청년의 때’이네요. 무엇이 그렇게 급하셔서 일찍 돌아가셨습니까... 41살 젊은 어머니와 우리 어린 삼남매를 그렇게 남겨두고 먼저 가시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렇게 어머니의 파란의 세월은 시작되었지요. 우리 어린 삼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느라고...
그렇게 온갖 고생을 다 하시는 것도 무엇이 부족했는지 어느 날 마당 수돗가에서 우리 남매들이 먹을 밥을 지으시다가 쓰러지셨고 그렇게 중풍으로 십여 년을 더 고생하시다가 예순 여섯을 마감수로 돌아가셨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기가 막힌 일이지만 그나마 다행이었고 또 위로가 되는 것은, 그날 밤- 집안에서 주무시다가 아무도 모르는 중에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새벽 3시 즈음이었던가... 형이 나를 흔들어 깨우고는 나지막하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것 같다...”
그때의 숨 막힘이 잠깐 재현되려 합니다.... 휴- 긴 한숨을 내어 쉬면서 다시 한 번 사진 속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면서 바라봅니다. 아버지는 앞에 서있는 저의 작은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계시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벌써 반세기도 훌쩍 넘어선 그 옛날의 흑백사진... 이제는 빛도 많이 바래서 누렇게 된 모양으로 자신의 지난 세월을 알리고는 있지만, 지금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한 때 그 사진 속의 아이였었고 지금은 환갑을 목전에 둔 저는 이렇게 ‘그때 아이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 옛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훈훈했던 미소들을 이렇게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아버지 지금 보고 계시지요? 저도 이제 환갑이어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혹시라도 다시 살아오시면 저보고 형님이라고 그러셔야 돼요. 얼굴도 이렇게 쏙 빼닮았으니 누가 아니라고 하겠어요? 히히히-”
애써 웃음으로 눙쳐보려는 이 마음을 누구라 알아주겠는가.....
산골어부 2014-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