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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잠을 주무십니까
IP : 121.158.6.90  글쓴이 : 김홍우   조회 : 4257   작성일 : 14-10-27 15:06:26 |

단잠을 주무십니까

‘단잠’이란 말 그대로 ‘달게 자는 잠’입니다. 곧 ‘sweet sleep’으로 달콤한 잠, 모든 피곤이 다 풀리는 잠입니다. 밝고 힘찬 새아침을 맞이하게 하는 절대조건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공히 누려야할 복(福)의 모습입니다. 저는 우선, 잠이 쉽게 드는 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로부터 “머리가 베개에 닿기도 전에-” 잠에 드는 아빠라고 놀림도 받습니다. 중간에 깨는 법도 거의 없고 그야말로 푹- 자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어제 TV뉴스를 보니-   
“연구 결과...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아이가 충분히 자는 아이보다 폭력성향이 놓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잠을 충분히 재우라’는 권유와 그러할 때에 이어지는 긍정적인 모습들이 의료진과 교육자들의 조언으로 이어지며 설명되었습니다. 최근에 아이들의 등교시간도 9시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와 실행들이 활발한데, 그 이유 중에 하나도 ‘잠’을 충분히 자도록 하자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참에 저는 10시 등교를 제안합니다.

작금의 우리나라 아이들의 여러 가지 학습 일과는 ‘충분한 잠’을 허락지 않습니다. 저의 둘째 딸아이만 하여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아침 7시 정도에 등교를 하고는 정규수업은 물론 학교에서 점심 저녁을 다 먹으면서 이런 저런 보충학습내지는 자율학습 등을 마치고 나면, 밤 10시를 넘기고 그래서 막차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밤 11정도가 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가끔씩은 그러한 ‘밤중 하굣길’ 중에 전화를 하며 사방이 깜깜하고 아무도 없어서 무섭다고 말하는 아이의 불안해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당장 어디론가 달려가서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싶은 생각이 왕왕 일어납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이도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보다는 더 짜증이 많아지고 신경질로 날카로워지는 횟수 역시 그런 것 같습니다. 결코 아이의 성격이 그러려니 하고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어떻게든지 그것을 바로 잡아주어 온화하고 이해하고 인내할 줄 아는 아이가 되도록 하여주는 것이 모든 부모들의 할 일일진대, 먼저는 ‘대학입시’라고 큰 괴물이 버티고 서서 아이들과 부모들을 협박하고 있으며, 아이에게 바라는 부모들의 ‘욕심’ 역시 결코 물러설 줄을 모르기에- 사실은 불안해하는 마음이지만 눈만 껌벅껌벅 바라보면서 마른 침만 삼키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도 아이들에게서 ‘충분한 잠’을 빼앗아 버리는 것으로 건강은 물론 곱지 않은 성격형성에도 힘을 더하여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비단,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하루가 찌뿌둥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짜증의 일과가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잠’이라고 하는 것은 ‘꿈’과 함께 현대 과학으로도 어떠한 현상이며 또한 무엇을 위하여 기능인지는 아직도 확연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사람은 잠을 자지 않으면 몸의 피로가 누적되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만큼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육체적 심적인 지구력 판단력 등은 물론이고 시각 취각 촉각 등과 팔 다리의 근육 긴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그야 말로 ‘비몽사몽’의 모양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잠재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고문’이라고 하지요.

사람이 80년을 산다고 볼 때 잠을 자는 시간은 보통 30년 이상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람의 일생이란 크게 먹는 시간, 일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으로 구분 됩니다. 상대적으로 먹는 시간이 짧은 것 같지만, ‘먹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들을 함께 계산하면 잠자는 시간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생이란 먹고, 움직이고, 자고... 다시 먹고, 움직이고, 자고... 의 연속이지요. 여기서 ‘움직이는 시간’이란 곧 어떤 인생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또는 살아있기에 그 ‘살아 있음’을 유지하기 위하여서 배우고 익히고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연속되는 생활 속 장면들의 이어짐입니다.

그 ‘사는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은 마치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것처럼 항상 먹어야 하고, 또 과도한 주행으로 엔진과 기계들이 열을 받거나 마모되어 상하지 않도록 일정시간은 운행을 멈추고 쉬게 하는 것처럼 사람 역시 모든 피곤함을 내려놓는 단잠을 자는 것으로 충분히 쉬어야만 합니다. 즉, 사람이든 기계이든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조물은 움직이는 만큼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의 모습은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입니다. ‘열심’이라는 당위를 세우지만 사실은 자신을 망가뜨리는 모습이며 자칫 다른 이의 삶에도 폭탄이 되어 뛰어 들게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실 때에 몸소 ‘쉼’의 모본을 보이셨는데 바로 ‘6일 창조와 1일 안식’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7일 한 주일을 생활의 주기로 잡아 6일 일하는 것과 하루를 쉬는 것으로 정형화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원리대로의 생활 모습으로서 또 건강패턴으로서 마땅한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더 ‘손에 쥐는 것으로 얻기 위하여-’ 이 원형을 이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이어지는 것은 감당 못할 누적으로 일어나는 각종 질병과 사고 그리고 폭력적 정신질환의 발생과 만연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보다는 스스로 원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지고-’ 헐떡이면서도 끝까지 내려놓을 줄을 모르고 날마다 뛰어가고, 걸어가고, 기어가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 ‘쉼’의 지혜가 없는 찾지도 않는 사람의 마지막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결국은 ‘수십 년 내에-’ 다 내려놓아야 할 것들,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애써 힘써 짊어지고 그 무게에 눌려 정신없이 허덕이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보시며 하시는 긍휼의 말씀입니다.

시편에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시127:02)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즉 새벽부터 밤중까지 일하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지지 아니한 몸을 혹사시키는 것으로서 사실은 아무런 유익이 없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에 ‘큰 유익’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그러한 삶의 모양을 칭송하며 ‘부지런함의 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부지런함’은 육체의 노동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영혼’의 모양에서 찾아지고 있어져야 합니다.

세상풍조를 만들고 일으켜서 이를 주도하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에 죄 없고 힘없는 아이들이 함께 내몰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무거운 몸으로, 그렇지 않아도 감당하기 벅찬 일과를 시작하며 시간마다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다가 다시 또 깜짝 놀라며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결국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일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불 속으로 ‘무너져 버리고-’ 새벽이 되면 다시 또 졸린 눈을 비비며... 이러한 한심한 생활 패턴이 우리 아이들의 몸도 마음도 상하고 병들게 합니다. ‘경쟁사회’ 속에서의 ‘생존’을 위한 훈련과 방식이 어떻구... 하는 말들의 위선과 허상을 찾아 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을 ‘망하는 길, 망치는 길’로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얻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날마다 잃어버리는 모습’으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스스로 죽이는 것이며, 주어진 ‘시간’도 낭비하는 것이며, 모든 ‘아름다움’을 더럽고 추악함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입니다. 예배하고 찬송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단잠을 자야 하고 또 그렇게 잘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평안한 잠-’ 삶의 기쁨과 건강함이 거기에서 꽃피워집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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