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지일 목사님 소천에 붙이는 글
1911년 생으로 103세의 고령이 되시기까지도 여전히 건강하신 모습으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셨던 방지일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소식입니다.
“닳을지언정 녹슬지는 않겠다.”
라는 마음 속 좌우명을 이루겠다는 각오로 일생을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소원을 이루어주신 것이겠지요. 돌아가시지 전날까지도 교회행사에 참여하실 정도의 건강함을 유지하셨다고 하니- 참 감사하고도 부러운 일입니다. 과연 ‘닳고 또 닳기는-’ 하셨지만,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자신의 ‘녹슬음’을 막아내고 이겨내셨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초기 발흥시대에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일찌감치 목회자의 길로 접어 든 방목사님은, 그러므로 우리나라 기독교 초기 주요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고 되새겨야 할 장면들 속에 들어 있었던, 그야말로 ‘마지막 산 증인’이었습니다. 동시대인들은 거의 모두 세상을 떠나셨지만 이제껏 살아계셔서, 그것도 건강백수를 누리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알리고 복음을 전하셨으니 할 일을 모두 하셨고 이렇듯 가실 길을 가신 것이기에 축하를 드릴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도도히 이어 온 초기 기독교의 믿음과 신앙의 마지막 남은 ‘올곧은 정신 줄’ 하나를 그마저 잃는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3년 전, 100세가 되시던 해가 ‘한국교회의 위기’라는 진단을 전제로 인터뷰를 하였던 자리에서 하셨던 말씀이 교계신문 속에 기사로 실렸습니다.
“예수를 못 믿게 하는 때도 아닌데 무에가 위기요? 우리가 뭘 잘 못해서 핍박을 받고 있나요? 다만 아이를 안 낳아서 교인이 줄고 교단마다 수장이 되겠다고 싸우는 것이 부끄럽지, 다른 것은 없어요. 금과 은은 없지만 예수님을 전해야 해요. 속죄구령은 복음의 핵심이야요.”
그 후로 3년이 지난 지금, 교회 회원으로서의 성도들의 수는 이렇듯 여전히 줄어들고 있는 것은- 물론, ‘아이를 안 낳아서-’ 전체 인구가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에도 기인(起因)하기는 하지만, 그것 보다는 ‘제 발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로 인한 현상인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뒤에 이어 하신 말씀 즉 ‘수장자리를 놓고 싸우는-’ 모습으로 대변되는 목회자들과 교회들의 ‘못나고 흉측한-’ 모습들로 인한 책임이 상당 하다는 것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신 ‘부끄러운 수장자리 다툼’은 무엇이며 왜입니까? 대장이 되려는 것이고 명예를 얻으려는 것이며 권세를 잡고 영광을 누리려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기는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방목사님의 말씀은 더욱 작금의 시대 목회자들을 심령을 채찍질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낮은 자리를 찾는 겸손한 자가 되라’고 외치셨습니다만- 오늘 날 과연 ‘가장 낮은 자리’를 찾는 모양을 갖추어야 마땅할 이들이 날마다 ‘가장 높은 자리’를 애써 찾아 올라가서는 똬리 틀기를 거듭하고 있는 모습들은 주님께 책망 받아 마땅한 모양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금과 은은 없지만-’이라고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하시는 말씀으로 금과 은을 떠나고 초월하여야 할 것을 종용하시고 있지만, 우리 시대에- (저를 포함한-)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결코 ‘금과 은’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슨무슨 회의라는 타이틀로 모인 교계와 교단의 운영 위원들은 모이기만 하면 ‘어떻게 자금을 더 모을까’하는 숙의만을 거듭하고 있는 것에서 아니라고 손사래를 칠 수 없으니 과연 교회와 목회자들이 ‘금과 은’에게 붙잡혀 꽁꽁 매여 있는 시대가 분명합니다.
그래서이겠지요. 방목사님 생전에 하신 말씀 중에 “육적인 계산에 흑자로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 계산에 적자로 살아야 한다.”는 고언이 있군요. 한 마디로 육의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영의 유익에 힘쓰고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더 간단명료한 표현으로는 “육을 위해 살지 말고 영을 위해 살라.”는 것인데- 오늘 날 모든 교회들의 설교강단에서 날마다 폭포수 같이 쏟아지고 있고 그래서 끊임도 변함도 없이 이어지는 ‘백년장수’의 말씀이기는 합니다만, 과연 오늘 날 이 시대에 누구에게 깊은 감동과 감화력의 말씀이 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깊은 한숨을 쉬게 합니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다 ‘부흥’을 외치며 몸부림과 발버둥을 동시에 치고 있는 이 시대에 “참된 부흥은 눈물의 부흥이다.”라고 하셨던 방목사님이 남기신 잠언의 말씀도 을씨년스러움을 더하는 가을바람에 떨어져 이리 저리 구르고 있는 마른 낙엽처럼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깊은 한숨을 내 쉬게 됩니다....
“닳을지언정-”이라는 말씀은 복음 확대 사역의 한 부속으로서 움직임을 멈추지 않겠다는 말씀이 분명한데 오늘 날 ‘우리 목회자들’은 무엇으로 ‘나’를 닳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휴-우-- 교계의 큰 어르신 목사님과 이렇게 작별을 하면서- 어쩐지 외투 깃을 더욱 곧추 세우고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해 저문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꼭이 자꾸만 더 쌀쌀하여지는 날씨 탓만은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