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학(加虐)의 희열(喜悅)
세상에 힘든 것이 누군가를 웃기고 즐겁게 하여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TV 속 오락 프로그램들을 보다 보면 연출자 및 연기자들이 매우 불쌍해(?)지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1박2일의 경우만 해도- 어떻게든(!) 시청자들을 웃기기 위하여 학대(虐待)와 가학(加虐)의 벌칙을 세워놓고 진행되어지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까나리 액젓’을 마시게 한다든가 맨발로 얼음 위에 서있기, 코끼리 코를 하고 뱅뱅 돌려서 그 어지러워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웃는 다던가 심지어는 상체를 벗겨 놓고 팔 다리를 들어서 대형 얼음 위에 올려놓고 문지르는 것 등등입니다. ‘벌칙’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웃고 넘어가는 모습들이기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가학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인간심리가 아닌 듯 녹아 있습니다.
“히히히- 나만 아니면 돼-”
강호동이 이끌던 1박2일 시절에 예의 벌칙을 피한 출연진들이 쾌재를 부르면서 희희낙락의 표정으로 하던 말입니다. 저 역시 그 모습들을 보면서 히히히- 하고 바보 같은 웃음으로 화답(!)하여 주기는 하였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러한 것이 사람의 모습이구나 하고 씁쓸한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습할 때에 그 파괴되는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의자를 놓고 맥주를 마시면서 구경을 하는 이들이 뉴스에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거대한 화염과 불꽃이 피어오를 때마다 그들은 탄성과 환호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꽃놀이가 아니었고 실제 상황이었으며 그 화염과 불꽃 아래서 숱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싸움구경 불구경은 밥 먹다가도 뛰어 나간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의 안전이 보장된 자리와 위치에서 ‘남이 겪는 사건과 불행’을 구경하는 것을 ‘볼거리’로 즐기는 것은- 감히 장담컨대, 구경거리에 숟가락을 집어 던지는 우리들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비정상의 취급을 받게 되는-) 극히 소수의 어떤 사람들을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길거리에 비둘기라도 모여 있는 것을 보면 돌멩이라도 던지고, 해변 가에 평화롭게 앉아 있는 갈매기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것으로 모두 쫓아버리면서 재미있어 합니다. 그리고는 그저 깔깔거리며 웃고 돌아서서는 금방 잊어버리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아무 일도 없었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아마도 이것이 ‘사람만 보면 도망하는 동물들의 유전적 생태의 모양’을 만들어 놓은 전수의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가학(加虐)에서 희열(喜悅)을 찾고 얻으려는 심리는 언제 부터인가 사람들의 심성 깊은 곳에 고착되고 또 쉽게 발휘 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 군대 폭행 등이 그것입니다. 상급 하급 관계를 따지고 고참 신참의 선을 그으면서 무슨 큰 자리나 권세를 가진 것처럼 자신의 말 한 마디에 ‘우르르 쫓겨 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히히히 하고 웃고 싶어 하는 ‘철없는 가학 심리’입니다. 아무도 쫓기는 사람의 모양이 되기를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사람으로 지내지도 않으며 어떻게든 내가 ‘쫓는 사람’의 반열에 서게 되어야 즐거운 것이 오랜 시간 병리학적 내성으로 굳어진 심리형태라고 이 방면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잘 못해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잘 못이라는 판정을 만들어 놓고 때리는 억지이며 망동(妄動)입니다. 곧 자신의 우위(優位)를 확인하되 단회적이 아니고 계속적으로 하며 나의 우위적 힘 아래서 전전긍긍하는 이들의 모습을 즐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양은 악습의 무분별한 배양의 방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습관들여져가는 모양이며 자신이 그것을 막아내지도 타인이 그것을 막아주지도 못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현상들과 모양들이 심화 되어가는 것을 보게 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급급히 ‘법’과 ‘제도’ ‘처벌’ 등의 강화를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곪아터진 부위에 일회용 반창고를 붙이는 모양에 다름이 아닙니다.
곪은 곳은 칼을 대어 째야 하고 터뜨려진 것은 더욱 힘주어 이를 악물고 바짝 짜내어야 할 것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애초부터 ‘곪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처방은 교육이며 모본입니다. 지금 아이들의 교육이수 과목 가운데 ‘국영수’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인성교육’이 쟁취하여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행하여지는 ‘국영수의 가학(加虐)’이 또 다른 ‘가학의 아이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억눌렸던 심리가 가장 쉽게 표현되어지는 것이 바로 무력이며 폭력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그 ‘누룩의 배양과 팽배’ 앞에 속수무책으로 서있습니다.
미국의 팝 가수 밥 딜런은 자신의 노래 ‘Blowing in the wind’를 통하여 세상을 횡행하는 가학으로서의 폭력의 대두와 만연에 대하여 지나가는 ‘바람만이 대답하여 주겠지...’라고 탄식하고 개탄하였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뜻 깊은 노래이기는 하지만 이제 우리는, 바람의 대답에만 목을 빼고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나와 우리 가족 특히 우리의 아이들이 ‘가학의 현장’에서 ‘폭력의 희생물’들이 되지 않도록 막아내고 막아서야 합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누구를 향하여서도 가학의 희열을 구하지 않겠다고 이빨을 사려 무는 각오와 결심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4-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