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예수상(像) 건립...
“전남 순천 지역에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수상’을 건립하려는 움직임과 관련, 한국교회언론회가 논평을 통해 거대 예수상 건립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한 것인지를 살펴 볼 것을 촉구하였다...”라는 기독교 연합신문의 기사입니다. (1258호)
거대한 예수상이라고 하면 누구나 먼저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의 코르코바도 언덕에 세워져 있는 세계최고의 ‘거대한 예수그리스도 석상’을 떠올립니다.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는 이 석상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 기간 내내 TV화면에 비추어지는 것으로도 더욱 유명하여 졌습니다.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 언덕에 올라오는데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 거대한 석상을 바라보면서 절을 하고, 구교가 대부분인 브라질 사람들이 묵주를 돌리며 기도를 하고 하는 모습들이 종종 TV에 비추어 집니다. 그 거대함에 압도당하여 고개를 숙이거나 또는 어떤 영험한 기운을 느껴 마음의 소원을 비는 일반인들도 많이 있지만, 그러한 이들 대부분은 개신교나 가톨릭 신자들이라고 관리와 안내를 맡은 이는 말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수상 건립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먼저는 물론 기독교인들일 것이며 다음은 지역 내에 관광 ‘명물’을 만들어서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싶어 하는 지자체 운영에 관련 된 이들일 것인데 아마도 그 ‘코르코바도의 석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순천 시내를 내려다보는- 그리고 순천 어디서든지 한 눈에 들어오는 거대 예수상-’을 세우겠다는 발상은 그렇듯 순천의 복음화를 위한 신앙심의 갈망에서, 또는 지자체 운영상의 물리적 이익을 위한 것들이 서로 복합되어 생겨난 것이겠지만, 저 개인적 소견으로는 그리 좋은 발상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먼저는 “세계에서 제일 큰-”이라는 전제(前提)에서 볼 수 있듯이 누가 더 큰 예수그리스도 상(像)을 세우느냐 하는 경쟁 심리는 종교적 입장과 목회자 관점에서 볼 때에 자칫 우리 사회와 같이 다종교 공동체 속에서는 기독교 부덕(不德)의 소지가 될 여지가 많습니다. 또 그렇게 거대 석상을 세워서 관광명소가 된다고 하면 분명히 거기에 와서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거나 이른바 ‘복전(福錢)’을 놓고 가는 일들이 생겨날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일이며 이것은 하나의 ‘숭배조장’이 되는 것이므로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고 그것을 섬기지 말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물론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은 ‘섬기는-’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섬기는 자리’를 깔아 주는 것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약간이라도 특이하거나 이상하게 생긴 자연물도 섬김의 대상이 되고 또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하여서도 종교적 경외심을 품고 그 앞에 엎드리는 것이 사람들의 심성입니다. 하물며 거대하게 서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상을 바라보면서라면-
지금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코르코바도 언덕에 올라 석상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이며 소원을 빌고 또 아침에 창문을 열고 석상이 있는 쪽을 향하여 아침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전언을 접하면서 성경에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이 왜 기록되어져 있는지 알게 됩니다. 거대 형상- 특히나 종교적 시각으로 바라 볼 수밖에 없는 거대형상이 세워지는 것은 그래서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시고 애써 보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변명과 당위를 만들어 가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고 느끼기 위한 모습들을 상(像)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의지적 영험함을 스스로 불어 넣고는 머리를 조아려 섬기고야 말지요. 그러한 섬김의 모양은 명백히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 아니며 허락하시지 아니한 ‘섬김’이라고 한다면 또한 명백한 ‘우상숭배’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욕심은 결국 ‘커지려는 마음’의 발로에서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날마다 더욱 더 ‘작아지고 낮아지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무엇이라도 ‘큰 것’을 추구하십니까? 공중에서부터 세워지는 기초는 없고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 되지 아니하는 큰 것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크고 좋아 보이는 것들이 우리들의 삶을 황폐화 시키고 있음을 부정하지 아니한다면, 지금 우리는 내 주변에 ‘아무렇게나- 인 것처럼’ 산재하여 굴러다니고(!)있는 작은 것들의 소중함과 귀중함에 눈을 뜨고 돌이켜 깨닫는 복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순천 시내를 내려다보는 예수그리스도의 거대 석상- 여러 가지 현실적 상황과 사회 정서 등을 고려하여 볼 때 이것은 그저 어떨까 하여 띄워보는 ‘애드벌룬’ 성격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될 것 같기는 합니다. 또 그렇게 되는 것이 좋은 일이고 다행한 일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4-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