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오늘 2014년 7월 17일... 새벽 기도를 마치고 예배당 문을 열고 나오면 저 멀리 아침 안개 속에 드러난 감악산 봉우리가 나를 반겨 줍니다. ‘안녕-’ 인사를 하고 우선 옆 창문 아래 피어 있는 흰 장미로 다가가서 코를 바짝 들이대고 크게 숨을 들이 마십니다. 꿈결 같은 장미향이 발끝까지 내려가는 느낌이 나면서 그 향기만큼이나 좋은 하루가 될 것을 예감합니다.
마당 저 끝 쪽에 있는 9평 밭 ‘웰빙9’으로 걸어갑니다. 걸어가는 중에 저쪽 동편에 여전히 미동도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을 바라봅니다. 여름 내내 해를 띄워 주는 산봉우리 윗쪽으로 오늘의 아침 해는 이미 떠올랐지만 구름에 가리어 있기에 한 여름 이른 아침부터의 뜨거운 열기가 한결 늦추어지기에 더욱 좋습니다.
맑고 시원한 산골마을 새벽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산허리를 휘감은 구름들을 바라볼 수 있는 아침풍경을 날마다 소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얼거려 봅니다. 언젠가는 아침 일찍 저 곳에 가보아야지 구름들 속에 들어가 있으면 과연 어떨까... 가끔씩은 거기에서 무지개도 시작되곤 하는 곳이잖아...
웰빙9 한 쪽에 심어 놓은 방울토마토 십여 줄기들이 어디까지 올라가려는지 저마다 왕성한데, 거기에 녹색 주황색 빨강색 토마토들이 군인들 훈련 도열 모양처럼 2열종대로 잔뜩 매달려 있습니다. 그 모양이 마치 개구쟁이 아이들의 기차놀이 풍경을 떠오르게 합니다. 붉어지기 시작한 녀석들은 대체로 고만고만하지만 어떤 녀석은 제법 커서 개복숭아 크기만큼이나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잘 익은 놈으로 하나를 따서 한 입 베어 물어 봅니다. 음--- 달콤하고 새콤한 토마토 즙의 맛과 향이 입안 전체를 적시고 콧김마저 향기롭게 하여 줍니다. 스르르 눈을 감고 더욱 그 맛을 음미합니다. 맑고 시원한 새벽공기, 어떻게든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보려고 하는 이른 아침 햇살의 싱그러움과 따사로움, 뾰로롱- 뾰로롱-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 그리고 입안 가득한 토마토의 향기들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내는 두메산골 속 ‘자연풍경’이라는 비빔밥을- 저는 지금 ‘새벽 만찬’으로 먹고 있습니다.
두 달 전 즈음 이었던가- 한 포기에 천 원씩에 사서 심은 작은 방울토마토 모종이 벌써 이렇게 크게 자라서 발돋움을 하여도 손끝이 닿지 않는 곳까지 주렁주렁 열매를 맺어주니 참 신기하고 이렇듯 눈으로 보면서도 정말 이것이 그것 이었던가 믿겨지지 아니할 때도 있습니다.
벌레를 잡으려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귀담아 들은 것인가- 저렇듯 일찌감치 나와서 벚나무와 목련나무 잎사귀 숲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노래하는 새들은 나를 반기는 것은 아닐까? 그래, 이 좋은 아침을 더욱 행복한 아침으로 만들어주는 작은 새들아, 정말 고맙구나. 이따가 자두나무 아래 흔들 그네 한 모퉁이에 쌀 한 옹큼 뿌려 놓으마. (아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와서 기도하고 먹어야 한다.)
아- 그러고 보니 금년에 새 식구가 된 흔들 그네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자두나무가 생각나서 시선을 돌려 보니 그 역시 그 곳에 서서 아침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특별하리만큼 자두가 많이 열렸는데, 한창 익어가는 붉은 색 자두들이 새벽이슬을 머금고 오늘 하루 그 빛나는 자태를 자랑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우선- 칭찬을 하여 줍니다. “자두나무야- 척박한 땅에서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느라고 수고했다. 가을이 되면 둘레를 파고 영양 만점인 퇴비를 듬뿍 뿌려주마.”
그리고는 역시 그 중에 가장 잘 익은 것으로 하나 따서 한 입 베어 뭅니다. 주황에 가까운 노란색 속살들이 주는 부드러움과 순간 퍼져 나오는- 그윽한 자두 향기가 코끝에 머물기를 오래합니다. 한 입 더 베어 물면 그야말로 그 향기의 퍼짐이 온 몸으로 전달되어 나도 한 그루 자두나무가 되어 그 자리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잠시 만들어 줍니다.
뚝방 길에 올라서서 피라미와 미꾸라지 그리고 깔딱메기와 쏘가리도 있는 천을 내려다봅니다. 물 위에 뽀글뽀글 기포도 올라오고... 아! 저, 저, 저 놈!! 물위로 펄떡 뛰는 놈의 하얀 배를 보십시오. 해가 갈수록 점점 드물게 보여 지는 쉬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쪽에서도 또 한 놈이 뛰어 오르는데- 아마도 물고기들의 새 아침 맞이 인사 인 것 같습니다.
“찬란하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이렇듯 날마다 펼쳐지는 산골마을 속 아침풍경의 아름다움과 생동함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왜 두메산골의 아침풍경뿐이겠습니까? 지구상의 모든 아침은 언제나 ‘찬란함’으로 시작되지요. 이 찬란함의 정기를 한껏 온 몸으로 받아서 자꾸만 생겨나는 모든 우울함과 고단함을 물리치는- 아름답고 싱그러움의 복 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4-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