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나의 현재입니다
작금의 입각후보자 청문회를 통해서 보여 지는 모양들이 연일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국가와 사회의 장래를 염려하는 이들의 장탄식(長歎息)이 이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가장 이슈가 되어 후보자에게는 걸림이 되고 욕(辱)이 되는 것은 바로 ‘과거사(過去事)’ 문제입니다. ‘예전에 한 일과 과거에 한 짓’들이 도마 위에 올라서 분탕질을 당하게 되고 여기에서 온전히 자유로웠던 사람은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속이고, 챙기고, 회피하고, 거짓으로 교묘히 법망을 피하였던 일들이 낱낱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과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 특히 자신의 가족들 자녀들 앞에서 욕을 당하는 이들을 보면, 쯧-쯧- 혀를 차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듯 혀를 차고 있는 저를 포함한 누구라도 그 자리에 ‘후보자’로 서게 된다면- 모르기는 하여도 같은 모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살았고 그 과거 속에서 과연 ‘하늘을 우러러-’ 일점 부끄러운 것이 없는 사람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대하여서 특별한 악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없고 ‘그 정도야 누구나 다 하잖아’ 하는 것을 당위를 세우며 애써 표정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월이 지나서 ‘그때’라고 생각하던 과거일이 지금에 와서는 ‘이때’와 현재의 시급한 문제가 되어서 자신을 앞길을 가로 막고 이루어 놓았던 모든 것을 옥죄이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때에 고개를 숙이게 되고 맙니다. 바로 작금의 청문회의 모양들이며 장면들입니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물질은 물론 자신이 한 말과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없어지는 것 같지만 저 먼 우주 속 어디엔가에서 떠돌아다니다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나서 지금의 나를 소개한다.”
그러니까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소중히 하며 입에서 나가는 말 한 마디에도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렇듯 심신이 ‘희끗한-’ 정도까지 살아보니까 과연 틀린 말이 아님을 피부로 알게 되면서 깊은 한숨을 쉬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여 볼 때에 ‘과거’는 결코 ‘과거사(過去事)’에 머무를 수 없고 나의 현재를 움직이며 향방을 정하여 주는 언제나 현재로 살아있는 동력됨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대하여 우리에게는 특히 가까운 예가 있어서 가르침을 주고 있는데, 곧 일본의 과거사(過去史) 속의 과거사(過去事)문제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기에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늘 발목을 잡히곤 하는 모습에서 실감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과 행위가 언젠가는 모두가 다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신의 장차와 미래를 예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저축을 하는 것처럼 ‘언젠가-’를 위하여 지금 근검절약하는 것으로 ‘누구에게나 꼭 다가오고야 마는-’ 미래의 날들을 앞서 예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그렇지 않고 당장의 도락을 위해서 허랑방탕(虛浪放蕩)하기에 멀지 않은 언젠가의 날에 사람들 앞에서와 가족들 앞에서- 죽고 싶으리만큼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모습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일생 중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 없고 그 모두가 언제나 ‘나의 현재’일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없어지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이 늘 내 속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면서 내 앞길의 향방을 결정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무엇이든 ‘앞서 준비하는 사람’ 되어야 합니다. 공부도 그래서 하는 것이고 연습도 그래서 하는 것이며 사업도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볼 때에 사람은 날마다 훗날에 드러날 ‘자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장차의 자신을 지금 만들어가는 날들을 지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부지런한 사람은 기쁘고 좋은 날들을 맞이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 게으른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온갖 비참함’ 뿐입니다.
근래에 와서 우리 사회 속에는 ‘예비 되어진 사람’이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쓰임 받기 위하여, 사랑 받기 위하여, 존경 받기 위하여 예비 된 사람이란 곧 ‘훌륭한 사람’이며 모두가 부러워할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예비 되게-’하였습니까?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예비하여 주기를 기대할 수 없고 오직 ‘나의 길’을 나 자신이 예비하여야 하는 ‘내 인생’의 길 위에 서있습니다. ‘예비 되어진 사람’이라는 말 만큼 과연 공인된 ‘예비 되어진 사람들’의 등장이 많으면 좋으련만-
내일, 모레 아니 ‘언젠가’를 위하여 오늘의 나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당장의 도락이나 쾌감보다는 내일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를 행복하게 하여주는 사람입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결코 후회하지 아니할 일입니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밝히 드러나게 되어도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는 일입니까? 그 일이 드러나서 이야기 되어질 때마다 나의 아이들이 나를 자랑스러워 할 일입니까? 그러한 일들을 예비하는-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 사랑받고 존경 받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4-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