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원(養老院)...
이곳 황둔 마을 우리 교회 근처에서 두 분이 단출하게 사시면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아내 권사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시자 강화도에 있는 호세양로원에서 생활하고 계신 박명화집사님을, 늘 혼자만 살아 있는 것 같이 이런 저런 핑계와 변명으로 차일피일 하다가 어제서야 뵈러 다녀왔습니다.
‘강화도’라고 네비게이션에 찍어보니 3시간 40분이 걸린다고 알려주네요. “아니? 여기서 강릉까지도 1시간 30분이면 되는데- 강화도가 그렇게나 먼 곳인가-?” 하면서 아침 일찍 몇몇 교회 식구들과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영동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강변로-그리고 김포대로라든가? 하는 길을 열심히 달려서 강화도 목적지에 도착을 하는데 까지 걸린 시간이 3시간 46분- 평생 처음 보는 강화도 풍경 속에서 옛날 드라마 속 “강화도령”의 흔적이 없을까 하고 둘러보는 저 자신의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이 실감되면서 참 허허로웠습니다.
한적한 곳의 도로변에 자리 잡은 호세요양원-양로원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친절하고도 반갑게 맞아주었고 그러한 모습을 보니 양로원이라는 이름이 주었던 쓸쓸함의 기분이 걷혀지면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집사님을 만나니 우선- 그 분의 건강한 모습에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권사님을 먼저 보내고는 늘 술에 취하여 길에도 쓰러지고 산이나 밭에도 쓰러져 상처를 입은 모습으로 발견 되곤 하여서 바라보는 이들에게 늘 안쓰러움과 걱정을 안겨주었었는데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모시고 나와서 자녀들이 오면 가시곤 하신다는 근처 ‘동막해수욕장’이라는 곳에 가서 돌솥영양밥으로 식사를 하였습니다. 근처를 둘러보니 지금은 겨울이라서 사람이 뜸한 해수욕장 풍경이지만 여름에는 상당한 활기가 넘쳐나는 곳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집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고 양로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역 특산이라고 하는 ‘동막 곶감’도 한 봉투씩 샀습니다. 헤어지기를 서운해 하시는 집사님에게 양로원 식구들과 나누어 드시라고 이 곳 강원도 황둔에서 준비해 간 쌀찐빵 상자들을 안겨 드리고는 돌아서서 나오는데 저희들을 바라보시는 집사님의 주름진 눈가가 그렁그렁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하여집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원합니다.
그렇게 돌아서 온 쓸쓸한 마음에서 일까요? 양로원(養老院)이라는 말의 양(養)자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기르다, 성장시키다, 양육 양생하다, 사육하다...”는 등의 뜻이 있군요. 그러나 어쩐지 “돌보다, 보호하다...”는 등의 뜻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들을 다 뒤로 하고 이제 나이 들어 늙고 힘없어 졌는데 또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자녀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여의치 않아서 양로원에서 남은 생애를 지내야 하는- 어르신들이 모여 계신 곳에 그러한 양(養)자를 쓰는 것은 어쩐지 도리가 아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보다는 보호원(保護院) 이라든가 호노원(護老院) 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쯧, 어련히 알아서 잘 붙인 이름이겠는가...)
양로원(養老院)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자녀들이 아버지나 어머니를 양로원에서 지내게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을 때, 자녀들은 그 어르신들이 어떠한 삶을 양로원에서 이어가게 되기를 바라게 될까요? 흠... 양로원이라... 대 놓고 말하기는 좀 무엇한 것이지만, 우리와 우리 사회는 그 분들에 대하여서-
“지금까지 할 만큼 하셨고 또 살 만 큼 사셨으니... 그리고 이 사회 속에서는 더 이상 서실 자리가 없게 되었으니 이제는 양로원에 가셔서 편히 계시다가... 또 편안히 돌아가시는 것으로 인생의 마름을 맞이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입이 아닌 손과 발과 눈빛으로 속마음에 가득 담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크게 틀리거나 잘 못된 것이라고 지적할 것은 없고 또 아니더라도- 이어지는 깊은 한숨은 무언가에 대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의 그 ‘무엇’이 여전히 있음을 단 한 번의 손사래로는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보통 한 여든 살 쯤 되면, 사회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어떠한 형태로이든 저 만큼은 ‘물러나 앉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아직까지도 우리 한국사회에서 ‘가족들과 떨어져-’지낸다고 하는 것은 확립되거나 보편화된 정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긴,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고 싶겠는가... 그러한 사정과 형편이라는 못 된 것들의 내몰림에 하릴없이 밀려나는 것이지요... 아무리 시설이 좋고, 좋은 음식을 날마다 내어주고, 시간마다 건강 체크를 하여 준다고 하여도- “가족 없는 체크무늬 보(褓)위의 부드러운 흰 빵 보다는, 낡은 멍석 위에서 가족과 함께 먹는 굳고 곰팡이 핀 빵이 더 좋다”는 서양 속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행복이란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인 만큼, 만년의 심정적 삶의 모양이 그 사람의 ‘일생의 결론’을 말하여 준다는 것에 동의 합니다.
양로원이라... 그러나 또한 장소를 능히 초월하는 것 역시 ‘마음의 전달’이겠지요. 지금 내 곁에 계시면 하루에 열 번 씩 손을 잡아 드리고, 혹 양로원에 가 계시면 조석으로 전화를 드리는 것으로, 여전히 자식의 관심과 사랑을 하루 세끼 양식으로 먹기 원하는 ‘어린 아이 같이 되신 어르신들’에게- ‘아름다운 날들’을 이어 선물하시는 복된 자녀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4-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