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약있어요?
그제 약국에 들러 약사에게 조심스레 물은 것입니다. 이 시대에 고약을 찾는 것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나 아닐까... 뜨악한 눈으로 쳐다보면 어떡하나... 고약이 없으면 무슨 약을 달라고 해야 하나... 등 갖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휘저어 놓은 직후입니다.
엄지발가락의 발톱을 깎다가 너무 깊이 건드렸는지 약간 피가 난 것을 그대로 방치 하였더니 덧이 났습니다. 한 이틀 정도 부어오르면서 만질 수 없게 아프더니 결국에는 곪은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거봐요, 발을 하도 안 씻으니까 그렇지-”
아내의 구박 소리를 들으며 결국 약국을 찾은 것입니다. 아마 저도 이제는 나이가 든 탓일까요? ‘곪은 상처에는 고약’이라는 등식을 지금까지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60년대 어린 시절에는 왜 그렇게 곪는 일도 많았었는지 누런 한지에 시커먼 고약을 여기 저기 붙이고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약사가 건네주는 ‘이명래 고약’을 받아드는 순간 30년 이상 헤어져있던 옛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야! 이명래-! 너 아직도 살아있었구나!!) 포장만 세련되게 바꾸어졌을 뿐인 ‘이명래 고약’이라고 하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약봉투를 손에 들고 이리 저리 돌려보며 감회에 젖었습니다.
거의 모든 약 이름이 외국어로 되어있는 이 시대에 우리말 사람이름으로 되어있는 약 이름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귀해 보입니다.
부지런히 집으로 달려와서 봉투를 뜯어봅니다. 겉옷을 갈아입은 이명래 고약은 속옷도 갈아입었군요. 예전처럼 누런 한지가 아니라 일회용 반창고가 3개 있고 거기에 고약이 이미 도포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저희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호-호- 불면서 따뜻한 입김으로 고약을 녹여가며 붙여보고 싶었는데...
오랜 세월-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도 몰랐던 어릴적 친구 이명래 고약이 이렇듯 내가 아플 때에 기꺼이 나타나서 곪은 상처를 마다 않고 아픈 발가락을 감싸주니 참 고맙군요. 친구는 오랜 친구가 좋다고 하더니만 역시...
초가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어릴 적 친구의 얼굴들이 저 높고 푸른 가을 하늘에 구름의 모양으로 피어오릅니다. 그래서 아이들처럼 불러 봅니다. 친구들아- 보고 싶은 친구들아- 지금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니---
사람이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더니 제가 벌써 나이가 들은 것일까요? 어릴 적- 늘 나의 아픈 곳을 기꺼이 만져 주었던 옛 친구 이명래 고약을 만나서 두런두런 추억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저 만큼 있던 아내가 또 안 해도 좋을 소리를 합니다.
“그러니깐, 다음부턴 발을 깨끗이 씻어요-!”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