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를 보며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TV 프로 ‘꽃보다 할배’에서 보여주는 할아버지들의 유쾌한 좌충우돌식 유럽여행의 스위스 편에서 일행인 이순재씨가 길을 잘 찾지 못하고 헤매자 그를 따라서 내내 걷던 백일섭씨(이하 씨)가 힘든 모습으로 어느 건물 계단 한 쪽에 주저앉기도 하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모습들 속에서 씨의 하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난... 누가 나이를 물으면 59세라고 하는데... 내 나이는 59세로 멈추어 놓았어. 그런데 이제는 정말 힘들어... 내가 70살이라니...”
하면서 사람 좋은, 그러나 조금은 허탈한 표정으로- 빙긋이 웃고는 있지만 감출 수 없는 ‘나이 듦의 씁쓸함’이 묻어납니다. 씨는 왜 하필 59세를 지정하여 자신의 나이로 멈추어 놓았을까요? 모르긴 해도, 아마 50대에서 60대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심정적 거부였을 것이 아니었을까요? 즉, 60세라는 나이- 이제 ‘환갑’ 즉 ‘노인’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방송에서는 꼭 60살부터 ‘60대노인’이라는 말을 붙여주는지- 우리 ‘꽃마음 할배 할멈’들이 항의 방문이라도 해야 될까 봅니다.)
그래서 저의 39살 말미 때가 생각납니다. 곧 40살 마흔이 되는 마지막 고비에서 저 역시 심정적으로는 39살이라는 명패를 움켜쥐고 40대로 넘어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나 누가 막아내겠습니까. 결국 마흔이 되어서도 누가 나이를 물으면 ‘만 39살’이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이제는 벌써 제 나이가 59살이라니... 허허 참 믿겨지지가 않네요. 저 보다 10년 앞선 인생 선배인 씨가 지금 70세가 된 심정도 이와 같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저의 이 나이 59세를 부러워하고 59세에 묶여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이 곧 이제 70살 되신 씨의 말을 들으니 “아하, 이 징그러운 내 나이 59세조차도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직도 어떻게 정의 하여야 할지 몰랐던, 그래서 뿌리치고 싶었던 내 나이 59세를 감사함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씨의 얼굴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거의 없겠습니다. 제가 씨를 인상 깊게 본 것은 예전에, 아마도 흑백TV 시절이었었던 것 같은데 무슨 드라마에서 약간은 철없는 고등학생으로 분하여 연기한 것으로입니다. 허허 씨의 고등학생 연기라- 참 오래 된 장면이지요. 손가락을 꼽아 보면 그때 씨는 20대 후반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역시 우둥퉁한 얼굴의 떨떠름한 모습과 표정은 지금과 거의 다르지 않았지요. 그리고는 최소한 40수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나이 70이 된 백일섭씨는 지나간 날들 속의 59세의 시절... 지금 저의 나이에 머물러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을 감추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
는 말들을 합니다. 주로 고난과 역경 등의 어려움을 겪는 중에 하는 자기 위로의 말로서 스스로의 힘과 용기를 부추기는 말입니다.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지나가는 것이 ‘고난과 역경’뿐이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것들은 꼭 ‘세월이라는 배’를 타고 지나가는군요. 그래서 그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의 얼굴에는 주름살도 흰머리도 한 줄 씩 한 올씩 생겨집니다. 지금 여기에 머물고 싶지만, 내 손을 꼭 붙잡고 씩씩하게 앞서가는 ‘세월’의 얼굴에서는 인정머리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 볼 수가 없고 찬바람만 휭- 불어 냅니다.
지금 얼마만큼 살아 왔습니까? 온갖 지난날의 아쉬움이 한숨에 섞여 나오기 시작하는 때입니까? 그래서 혹 ‘겸손’으로보다는 ‘시름’으로 자꾸만 고개가 숙여지는 모양은 아닙니까?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당신의 그 지금의 나이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누구에게나 ‘지금’이 가장 젊은 때다”라고 고쳐 말하여도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무엇을 하십니까? 또 다시 세월이 흘러간 장차 속의 어느 때에도 역시 그때의 ‘지금’의 자리에서 돌이켜 볼 때에 절대로 후회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지금’의 모습을 우리 ‘할배들의 역사’로 만들어 가십시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3-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