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구걸 깡통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미국이 또한 세계에서 걸인들이 가장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런데 인터넷 화면을 보니 미국 거지들도 구걸에 깡통을 이용하고 있군요. 바로 이 깡통을 길바닥에 놓고 구걸을 하는 나이 많은 흑인걸인에게 한 백인여성은 가방을 열고 동전 한 줌을 내어 주었는데 - 쯧, 이럴 수도 있는가! (혹 약주를 한 잔 하셨던 것인지) 거기에 남편이 선물하여준 다이아몬드 반지가 동전들과 함께 쓸려서 - ‘구걸 깡통’ 속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수백 킬로 떨어진 집에 도착한 다음날에서야 반지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한 바탕 소동이 일었음을 분명하였을 것이고 혹시 구걸 깡통에? 라는 말을 전해들은 남편은 부랴부랴 차를 몰고 그 걸인을 찾게 됩니다. 값비싼 다이아반지를 횡재한 걸인이 아직도 그 자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운전을 하는 내내 떠나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도착하여 보니- 다행히(?) 그 걸인은 그 자리에서 여전히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심호흡을 하면서 조심스레 다가가 자초지총을 이야기 하니 -
“그래, 맞아요. 그 다이아 반지는 분명히 임자가 다시 찾아 올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잘 넣어 놓았어요.”
부시럭- 부시럭- 그는 깊은 속주머니에서 종이로 꼭꼭 싸 놓은 다이아반지를 꺼내서 돌려 주었습니다. 남편은 너무나 감사해서 당연한 마음으로 사례를 하려 하였지만 걸인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끝내 사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이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렸고 이에 감동한 이들의 온정이 봇물처럼 터지고 이어지면서 모금운동이 시작 되었고 한 주간 정도 되는 즈음에 1억 몇 천 만원이 모였다는 기사가 화제입니다.
무슨 특별히 예외가 되는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한, 세상사람 모두는 태어나고 자라가면서 ‘정직할 것’을 교육 받습니다. 그러나 과연 날마다 흔들리지 않는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많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 하여 살펴본다면 말할 것도 없이 ‘정직이 주는 손해(?)’에 대한 아쉬움과 또 무언가 나의 몫을 내어 놓아야만 할 것 같은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정직한 것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 정직함으로 인하여서 무엇인가 ‘내 것’ 또는 이미 ‘내 것 된 것’ 혹은 ‘분명히 내 것이 될 것’을 내어 놓아야 한다는 현실을 웃으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욕심과의 싸움’입니다.
“야- 너 왜 그래? 횡재 한 것이잖아, 그 다이아 반지는 엄청 비싼 것이고 너의 지금의 처지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어. 지금도 손가락 물고 너만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 봐, 계속 이 따위 거지꼴을 하고 깡통만 바라보고 살고 싶은 거야?”
삼류 소설을 쓰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마도 이러한 울림이 그 걸인의 마음속에 갈등으로 일어났지 않았겠습니까? 그 다이아반지를 팔아서 할 수 있고 지금의 처지와 상황을 반전 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그의 머릿속에 둥실둥실 떠올랐을 것입니다. 같은 처지의 가족들이 있었다면 더욱 그러하였겠지요. 그러나 그는 예기치 않은 횡재로서의 꿈으로 인하여서 소멸되어 버릴 듯 깜박 거리는 ‘정직함의 작은 불꽃’을 호-호- 불어서 되살려 놓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내 것’은 아니지만, ‘내 것’으로 감추어 버릴 수 있었던 것을 끌어안고 하룻밤과 하루 낮을 예전 보다 훨씬 더 긴-긴 날로 보내고 있었겠지만, 그의 양심이 원하고 있던 대로 반지의 임자가 찾아 왔을 때, 망설임 없이 ‘yes' 함으로- 자칫 일평생 자신을 옥죄이는 족쇄가 될 뻔한 악한 이익을 뿌리치고 스스로에 대하여 ‘자랑스러움과 자유함이라는 훈장’을 수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듯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모양을 바라보고 귀감을 삼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 놓는 것으로 그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도왔습니다.
‘잘 못 들어 온 것을 꿀꺽 삼키지 아니하고 토해 낸 구걸깡통’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훈훈해 졌습니다. 거짓과 술수와 분별없는 욕심이 날마다 그 팽배함으로 더하여 가는 것이 오늘 날 우리 시대의 우울한 풍경들이기는 하지만, 무엇이든, 그것이 비록 작고 보잘 것이 없으며 어쩐지 내 것을 내어 놓게 만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정직함’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드러난 정직함’이든 ‘감추어진 정직함’이든 그 당사자의 삶 속에서 꼭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 세상 속에 디자인 된 이치요 원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향은 어디에 있든지 그 ‘향기’로 자신을 알린다고 했습니다. 우리 시대에 정직함의 향기가 이렇듯 사라지지 아니하고 또 그 향기를 민감하게 맡아내어 이렇듯 박수 하고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이들이 있는 한 - 우리들의 삶은 희망과 소망으로 즐겁습니다. 성경에도 '힘써 선한 양심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선한 양심으로 믿음의 가치를 더욱 드높이는 복된 날들이 이어지시기 바랍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