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지나며...
2012년 성탄절도 역시 분주히 지냈습니다. 여기서 ‘분주히-’란 대부분의 시간을 ‘성탄행사의 분주함’으로 지낸 것을 말하지요. 그리고 성탄행사란 곧 24일 저녁 ‘성탄전야행사’에 집중되어집니다. 이제는 어지간히 나이 든 목사로서 해마다 성탄행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그 모든 분주함이 잠시 내려져서 이렇듯 모처럼의 여유를 가지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자면, 저 먼 하늘에서 눈송이와 함께 솔솔 내려오는 것은 바로 어릴 적 성탄절의 장면들입니다.
1960년대 중반 즈음.... 성탄절이 되면 교회마다 트리등불을 십자가에서부터 줄줄이 걸어 내렸습니다. 판잣집이 여전히 즐비 하였던 시절, 별다른 볼거리도 없었고 그래서 년 중 8.15 광복절 때 하루 다니는 꽃전차마저도 큰 볼거리가 되어 몇 날을 기다렸다가 큰길로 나갔던 시절인지라 반짝이면서 색색으로 펼쳐진 트리등불은 일부러 서서 바라보는 좋은 구경거리였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평소에는 교회에 나오지 않던 제 친구들도 교회에 꼭 나오곤 하였는데 ‘성탄선물’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배 시간에는 꾸벅꾸벅 졸았지만 예배 후에 빵과 과자 등을 담은 선물주머니를 받고서 서로 보며 웃고 떠들었던 어릴 적 친구들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그때도 역시 24일 저녁이면 교회에서 성탄전야 행사를 하였습니다. 연극도 하고 합창도 하고 악기로 합주도 하였었는데 그래서 그때 악기라고는 처음 배운 것이 바로 피리와 하모니카였는데 성탄절 한 달 전부터 열심히 교회에 모여서 ‘고요한 밤’과 ‘징글벨’등을 연습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날이 되어 많은 성도들 앞에서 합주를 하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리든지...
우리들끼리 모이는 공간인 중등부실에서는 작은 선물들을 마련하여 모아 놓고 각각 제비를 뽑아서 하나씩 가져가는 성탄선물 뽑기 행사도 있었는데 당시에 제법 큰 돈 들여서 앨범 같은 것을 사다가 놓고는 제가 마음속으로만 좋아했던 여자아이 아무개가 그것을 뽑아가게 되기를- 나름 간절히 기도했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거의 없어져 버린 ‘새벽송’도 돌았습니다. 전도사님이나 고등부나 청년부 형 누나들과 함께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골목길을 누비면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르면 그때까지 자지 않고 우리들을 기다렸던 장로님 집사님들이 나와서 함께 노래를 하고는 사탕이며 과자 보따리를 주었습니다. 추위에 시린 손을 호호 불면서, 얼어 버린 것 같은 두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전혀 지치지도 싫지도 않았고 늘 기다려지던 일이었는데...
그때도 거리에는 구세군의 종소리가 있었고 교회는 물론 동사무소에서도 성탄절 불우 이웃돕기가 왕성하여서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더욱 가난한 이들에게 구제품 옷가지며 연탄이나 밀가루 포대 등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건네주는 손길들과 건네받는 손길들이 모두 허리 굽혀 인사하면서 고마움과 감동의 웃음소리가 가득하였었는데- 지금도 역시 전달은 있지만 감동만큼은 그때만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 모든 성탄의 추억들이 서려있는 곳, 저 멀리- 서울 운동장까지 내려다 볼 수 있었던 왕십리 꽃재 고갯길 위의 왕십리 감리교회... 어린 시절의 숱한 장면들을 품고 있는 곳이기에 늘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어떤 성탄절을 보내고 있을까... 굵직굵직한 선거의 벽보들이 교회 바로 옆 우리집 담벼락에 몇 번 붙었다 떼어지기를 반복하더니 이제는 거의 반세기가 흘러가 버렸고... 또 그 골목길을 콧물을 훔치며 뛰어다니던 아이는 목사가 되었고... 유난히 많고 검었던 머리숱은 하나 둘씩 빠져 나가더니만 얄팍하니 얼마 남지 않은 머리털마저도 하얗게 되었고...
성탄행사를 진행하면서 그 당시의 내 또래 즈음 된 아이들을 데리고 이런 저런 모양으로 행사 연습을 채근을 하다 보니 그 당시에 우리들을 채근하였던 중등부 전도사님의 수고와 노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키 크고 눈이 부리부리 하셨던 전도사님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실까? 목사님이 되셨을까? 또 교회 한 켠 중등부실에 오그르르 모여서 ‘성탄등’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새벽송을 준비하던 친구 누나 형들은 이 성탄절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스름 어두워져 가는 이 저녁에... 산골 마을 우리 교회 마당에, 그야말로 하얗게 송이송이 내려앉는 눈송이들의 멋진 춤사위 공연을 창밖으로 바라보면서- 아득해진 지난 시절 속에 버무려져 있는 무언가 모를 아쉬움과 그리움이 무럭무럭 피어납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2-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