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 걸림돌, 굴러가는 돌
딛고 건너가거나 또는 올라서도록 하여 주는 돌을 디딤돌, 걸려서 넘어지게 하는 돌을 걸림돌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 생각해 보면, 그 중에는 디딤돌이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걸림돌이 된 사람들의 얼굴도 떠오르게 됩니다. 나에게 좋은 말과 본을 보여주면서 나를 이끌어 준 사람과 내가 가려는 길목마다에서 딴죽을 거는 것으로 나를 휘청거리게 하고 넘어지게 하였던 이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생동안 늘 고맙게 생각하면서 떠 올리는 얼굴이 있는 반면에, 생각 날 때마다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얼굴이 찌푸려지는 얼굴들도 있습니다. 차라리 생각이 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어찌 된 일인지 그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얼굴들’은 더욱 자주 떠올려 지는 것도 희한 하지요. 물론 그러한 기억들 중에는 나의 실수와 잘못이 일조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멀리 와서 돌아보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나는 내 기억 속의 인물들에 대한 평에 대하여서는 내가 ‘엄격한’ 심사위원이 되어버리지요.
간판을 내어 걸은 모든 ‘교육’에서 사람은 누구나 디딤돌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걸림돌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디딤돌이 되지 못하고 또 그렇게 되는 것을 오히려 꺼려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꺼내 놓고, 기꺼이 감수하고 베풀어 주는 모양이 아니고는 결코 디딤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곧 “나를 딛고 가라”는 말은 자신의 ‘밟힘’에 대하여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왜 꼭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까? 나 살기도 바쁘고 녹녹치 않은데 왜 남까지 신경을 쓰며 또 그들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과연 이유 있는 항변입니다.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을 하여 보면, 지금까지 살아 온 나의 삶 역시 ‘누군가에 의한-’ 삶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알에서 태어나지 않은 다음에야 어머니가 가장 첫 번째 디딤돌이지요. 그 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면 나의 온갖 모양의 ‘똥오줌’을 그 분이 처리하여 주었습니다. 또 일가친척이 있고 친구와 스승들이 있으며 이웃과 직장 동료 및 상사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 이들 모두는 각각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나의 삶이란 어떤 사람의 삶의 일부이며 그 어떤 사람의 삶은 내 삶의 일부였고, 일부이며, 일부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나의 ‘디딤돌’이 되어주었고 또 지금도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회공동체라는 이름 아래서 누구나 자동으로 서로의 디딤돌들이 되는 것이니만큼 크게 신경 쓸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하여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사는 모양의 완성은 서로 기꺼이 ‘밟혀주는’ 모양에 있습니다. 즉, 나의 불편과 손해를 감수 하는 것으로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것’이지요. 지금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 중에 이 모양을 피하여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피하려 하거나 거부 할 때에 즉시 ‘걸림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평안과 평화’는 서로가 기꺼이 디딤돌들이 되어 줄 때에 이루어지고 완성됩니다. 디딤돌의 모양은 ‘다정한 말 한 마디’일 수도, 은은히 지어 보이는 작은 미소일 수도, 꼭 잡아주는 손과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는 모양일 수도 있으며 힘든 손에 쥐어주는 지폐 몇 장 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 하지마... 내가 있잖아, 기꺼이 힘이 되어줄게...” 라고 당신의 귀에 속삭여 주는 젖은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오셨습니까? ‘디딤돌의 삶’입니까? 아니면 ‘걸림돌의 삶’이었습니까? 그도 저도 아니면 혹시 그저 ‘굴러가는 돌’의 모습은 아니었습니까? 내 살 길 내가 간다는 식으로 독불장군처럼 혼자 열심히 굴러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가 굴려 놓았기 때문에 동력을 얻어 굴러가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 할 필요도 없이 더 분명한 것은 ‘멈출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열심히 ‘굴러가는 돌’이 멈추는 때를 맞이하는 것처럼, 사실은 디딤돌도 걸림돌도 결국에는 그 맡은 소임을 다 하는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에 각각 자신들이 지나 온 삶의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어떠한 표정들을 짓게 될까요?
어쩌면... 사람이 꼭 가지고 누려야 하는 행복이란 ‘만년의 행복’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디딤돌’로 살아 온 사람의 만년의 모양 말입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