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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백만원...
IP : 118.44.11.73  글쓴이 : 김홍우   조회 : 6161   작성일 : 11-12-17 11:51:36 |

눈물 젖은 백만원...

 

“없는 사람의 사정은 없는 사람이 안다”라는 말이 바로 눈앞에서 감동적으로 펼쳐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저희 교회에서 가장 가난하기로 1, 2위를 다투는 두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한 분은 나이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 집사님으로 혼자서 어렵게 지내시고 계신 분이며 또 한 분은 남편과 헤어지고 역시 어렵고 또 어렵게 중고등 학생 두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궂은일을 마다 않고 지금도 얼어붙은 길거리 한 모퉁이에서 얼어 오는 두 발을 동동거리면서 붕어빵을 굽고 있는 40대 후반의 K집사님입니다.

엊그제 할머니 집사님이 백만원이 들어있는 봉투를 가지고 저를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K집사가 무척이나 어려운 것 같은데 이것 좀 전해주세요.” 벌써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면서 내어 미는 그 돈은 역시 형편들이 넉넉지 못한 자녀들이 근근이 쥐어드린 용돈을 수년간 모은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두 무릎 관절이 아파서 심히 고통을 받고 있어서 수술을 하여야 한다는 사정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기가 막혀서 그 봉투를 다시 할머니 집사님 쪽으로 밀어드리면서 “집사님, 지금 집사님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형편인데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 마음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테니 이것은 다시 넣어 놓으세요. 다리 수술도 하셔야 하고...” 라고 말하는 저 역시 울컥하는 마음이 생겨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 집사님은 연신 눈물을 훔쳐내면서 고집을 꺾지 않으셨습니다. 기어이 봉투를 저에게 맡기시고 돌아서서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시면서 가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목사로서 너무나도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듯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선뜻 백만원을 내어 놓은 적이 있는가...’ 나 역시 가난한 사람이라는 내심의 변명과 핑계를 놓칠세라 꼭 움켜잡고 스스로의 당위로 내세우고 있는 못난 목사가 아닌가. 하나님이 이렇듯 가장 가난한 사람의 선한 행위를 통하여서 나를 가르치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목사의 삶’으로서의 지난 날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받을 수 없어요. 오히려 제가 그 집사님을 도와드려야 하는데...” K집사님은 내가 전달하는 봉투의 사정을 듣고는 손사래를 칩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K집사님은 늘 기회만 있으면 김치며 산나물이며 온 산을 헤매고 다니면서 따서 만들어 놓은 개복숭아 담금액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할머니 집사님을 도와드리는 것 말입니다. K집사님은 벌써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웁니다. 저는 잘 달래서 봉투를 손에 쥐어 주면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사님,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할머니 집사님의 선한 일이 아름답게 꽃피워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양쪽의 눈물을 가득 머금은 ‘눈물 젖은 백만원’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런 저런 모양으로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호와 은혜를 감히 말해가면서 지폐 몇 장씩을 쥐어 드린 것이 한 낱 목사의 체면치레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이라도 나는 백만원이 있다면 누군가 이 돈을 가장 필요로 하는 가난한 사람에게 웃는 얼굴과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내어 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근데 돈이 있어야 말이지... 지금 나도 아이들 학비대출로 진 빚이 쌓여 있잖아...’ 하는 생각 역시 강철 철사 끝이 퉁겨져 일어나듯이 탱탱 거리면서 결코 머리를 숙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뻐하는 마음으로 ‘나의 큰 것’을 ‘더 큰 것’ 될 것이 분명한 누군가에게 내어 놓는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목사 된 사람은 그러한 마음의 갈등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베풂의 모양’은 내가 쓸 것 다 쓰고 남은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꼭 써야 할 것이지만 ‘누군가가 더욱 꼭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면 기꺼이 내어주고 나누어주는 모양인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됩니다.

백만원... 가진 이들에게는 작은 액수이겠지만 없는 이들에게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인 액수가 생각나게 하는 것이 또 있습니다. 우리 교회 도로변 경계에 세워진 기다란 쥐똥나무 담장은 5-6년 전 즈음에 저 아래 지방에 어떤 작은 교회의 장로님이 누구에게 알려 본 적이 없는 저희 교회 사정을 어찌 어찌 아시고는 보내 주신 ‘백만원’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장로님 역시 지갑에서 쓱- 꺼내 주신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구입하려고 모아 놓으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쓰여 지는 것이 더 감사하지요.”라는 전화 속 음성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고 보면 현금이든 물품이든 여러 분들이 보내 준 것으로서의 모양들이 나의 주변과 교회 안팎에 각각의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서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한 층 더해집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로 역시 사랑 받는 이들의 모습이 함께 서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다짐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여기에 서있는 것으로서만 나의 현재를 꾸려갈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떠한 곳에 또는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로서의 아름다운 영상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 말입니다.

곧 하나님 나라에 쌓아 놓는 공적이며 은혜의 날들이 찬란하게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되는 디딤입니다. 가장 가난한 두 사람이 서로 베풀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목사의 삶을 일깨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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