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실종시대
“중학생이 자신을 선도하는 교감을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라고 뉴스는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담배를 압수하며 책망하는 과정에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여교사’가 학생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폭행을 당하는 일이 있어 났었습니다. “여교사의 머리채를 잡고...”라고 아나운서는 전하였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학생들이 교장실에 몰려가서 교장을 감금하고...”라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교육현장 속 사건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교권추락’ ‘권위상실’ 등의 문자를 써가면서 개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먼저 위 사건들의 보도의 모양과 표현에 주목하여 봅니다. 위 사건들의 보도 중에 ‘선생님’이라는 말이 빠져있는 것을 감지 하셨습니까? 불과 몇 년 전만 하여도 교감선생님, 여선생님, 그리고 교장선생님이라고 깎듯이 불리어 졌던 호칭들이 이제는 교감, 교사, 교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듯 ‘교사’라는 직업과 직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만 호칭하는 말속에서 존경의 뉘앙스는 아무데서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부터 교사를 ‘선생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선생’이라는 말은 존칭어입니다. 한문으로는 선생(先生), 즉 먼저 세상에 나온 사람이라는 말이지만 우리의 근현대사 속에서 선생이라는 말은 이 사회에 가장 존경 받는 이에 대한, 그리고 존경하여야 할 이에 대한 고귀한 호칭이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김구선생 여운형선생 함석헌선생 김대중선생 하는 식으로 직업과 직위를 떠나서, 심지어는 연령조차도 넘나들면서 불러지는 존경으로서의 호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 각처에서 ‘선생님’이라는 말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교사’로만 불러지는 것으로 ‘존경의 대상’은 없어지고 ‘지식의 전달자’로만 남았습니다. 전달자는 전해주고 돈만 받으면 되는 것이고 전수자 역시 전해 받고 돈만 주면 되는 것이기에 학교는 지식을 팔고 사는 장터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지식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고파는 지식으로서는 ‘인격’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많이 아는 사람’은 만들어 내지만 ‘훌륭한 사람’은 만들지 못하는 것이지요. 드디어 ‘선생질’과 ‘배움질’의 시대가 온 것입니까.
사회의 언어 순화에도 마땅히 앞장서야 할 공영방송에서 조차 이렇듯 ‘선생님’이라는 말을 빼버리고 교장이- 교감이- 교사가 하는 식으로 말을 한다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에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배웁니다. 어른들이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는 선생님을 어떤 아이가 ‘선생님’이라고 애써 호칭하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아이들은 국샘(국어교사) 영샘(영어교사)이라는 신조어를 장난스레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존경심’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론 자신의 위상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선생님들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받지 못하는 것은 선생님들의 잘못이 큽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서 이렇듯 방송에서조차 공식적으로 ‘선생님’을 지워버리는 것은 장차 이 나라의 주역들이 될 어린 학생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사회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언어적 정서순화는 이 나라가 나아가게 될 향방과 이루어져 갈 장차의 모양에 직결되어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반면에 온갖 욕설은 마치 고기가 물 만 난 듯이 방송 속에서 난무하고 있습니다. 차마 글로서도 옮길 수 없는 원색적인 육두문자와 쌍욕들이 그대로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슬쩍슬쩍 지우는 시늉을 하더니만 지금은 아이들 앞에서 TV를 켜기가 겁이 날 정도입니다. ‘똥파리’라든가 아예 ‘욕설의 난무’로 흥행 열에 서보려는 영화가 나오더니만 급기야는 아무도 제어하지 않는 쌍욕잔치가 스크린과 TV영상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어떤 TV프로그램의 나레이터를 맡은 여자 아나운서가 “이런 우라질 경우가 있나...”하는 말을 연이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듣고는 긴 한숨을 쉬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현상들을 ‘걸쭉한 입담’이라고 미화합니다. 동의하십니까? 욕설이 무슨 입담입니까? 입담은 ‘말하는 솜씨’를 말합니다. 언어의 기술이며 상대방을 압도하는 언변입니다. 쌍욕도 언어구사로서의 기술입니까? 물론 ‘욕’도 욕 나름인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때와 장소와 상대에 따라서 사용되어질 수 있는 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욕’으로 옷 입혀진 ‘정(情)의 교감’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격앙된 감정에 의해서 뱉어지는 것으로 상대를 멸시하고 저주하는 쌍욕들이 거기에 해당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걸쭉한 입담’이라고 하는 말을 쌍욕을 토해내는 입구에 간판으로 걸어서는 안 됩니다.
말은 자신을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말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인격을 가늠하여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교사’라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선생님이 아니야 교사야.”라고 가르치겠습니까?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된다면 유치원 아이들도 “엄마, 아무개교사가...” 또 교감이- 교장이- 라고 말하는 때가 곧 오게 될 것입니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우리 사회 속에 좋은 것으로 자리를 잡고 있던 ‘아름다운 풍속도’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또한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 자리에 오직 ‘거래의 이름들’이 앉혀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야의 금배지들은 때만 되면 ‘교육을 위한 천년대계’를 말하곤 하지만 여의도 큰 건물 속에서는 당리당략의 고성과 멱살잡이들만이 우리들에게 전해지는 날마다의 뉴스 영상이며 급기야는 견학차 방문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국회를 돌아보고 있는 날에도 의원들의 추태는 여전히 이어졌다는 보도를 접하다 보면 정말 기(氣)가 막히는 일이 무엇인지 실감합니다.
우리의 아이들-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으며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존경 받는 이름으로의 ‘선생님’들이 많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존경의 이름으로서의 호칭 ‘선생님’을 살려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뜩이나 ‘참 선생’으로서의 ‘선생님’들이 자꾸만 드물어지고 있는 이때에 방송에서 마저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대하여서 “그래 아주 없어져라.”하는 식으로의 모양을 보여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을 자주 말하는 것으로 ‘선생님의 필요성’을 더욱 일깨우는 공영방송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1-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