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수건...
인터넷상에- 어느 찜질방 주인의 고육지책일 수밖에 없는 사진 한 장이 씁쓸함을 자아내게 합니다. 찜질방 전용 수건인데 그 하단에 아주 크고 굵은 글씨로 “훔친 수건”이라고, 누구나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인쇄하여 놓았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속사정은 ‘수건도난’이 그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 분명 합니다. 누가 찜질방에 일부러 수건을 훔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손님들 중에는 찜질방 내에서만 제공되는 수건을 그냥 슬며시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훔친 수건’이라고 크게 써놓은 수건은 어디에 가서라도 사용하기가 매우 껄끄러울 것이며 찜질방 주인은 그것을 생각하여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 같습니다. 그 수건은 집안에 돌아다녀도 그렇고 목에 두르고 있어도 그렇고 또 빨랫줄에 널어놓을 경우 매우 민망할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어느 정도의 도난 방지 효과를 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저의 경우라면 절대로 그 수건을 가지고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찜질방 내에서도 ‘훔친수건’이라고 커다랗게 쓰여진 수건들이 여기저기 있는 것은 좋은 풍경이랄 수는 없기에 주인 된 사람의 고육지책임이 더욱 와 닿습니다. 사실 수건은 그리 귀한 물건도 아니고 한 장의 값도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그저 한 달에 서너 장 없어지는 경우라고 한다면 절대로 ‘훔친 수건’이라고 커다랗게 써놓기 까지 하면서 방지책을 세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 60년대... 얼마나 물자가 귀했는지요. 어디를 가든 신발을 벗어 놓고 들어가는 곳이라고 하면 구두는 말할 것도 없고 비록 낡은 고무신이라도 챙겨들고 들어갔었습니다. 또 빨래라도 널어놓을라치면 어린 아이라도 감시자를 세워야 했습니다. 지나가는 거지, 떼거지 또는 남사당 끝말의 놀이패들과 엿장수, 고물장수나 또 ‘말 안 듣는 아이’를 커다란 망태기에 넣어 데리고 간다고 하여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넝마주이, 곧 재활대원들이 집게로 휙- 걷어서 커다란 망태기 속에 넣어가지고 가버리는 일이 왕왕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떡합니까. 모두가 나랏님도 못 말린다는 ‘가난’이 만들어낸 모습들로서의 가슴 저린 추억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분명 국제사회에서 공인하는 ‘살만한 나라’가 되었건만 아직도 수건 같은 값나가지 않는 물건, 그래서 어디에다가 내다 팔수도 없는 일상의 소모품을 남 몰래 손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가야만 하는 사람의 심리와 사정은 무엇일까요?
분명 고의에 의한 것이라고 하여도 수건 한 장을 슬며시 가지고 나온 것을 도둑질, 그러한 사람을 ‘도둑놈’이라고 한다면 다들 너무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또한 분명히 짚고 나아가야 할 것은 내 몸에 붙은 ‘작은 악습’이 자신을 망치는 도화선이 되며 그것이 ‘도벽’일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중학생시절에 아버지 양복 주머니를 뒤져 돈을 꺼내 가지고 친구들과 희희낙락 할 때는 좋았지만, 결국은 발각되어서 “큰 형에게 죽기 일보직전까지 두드려 맞고” 그 다음부터는 아버지 양복조차도 쳐다보기가 두려웠다고 지난날을 술회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여도, 또 아무리 어린 나이라고 하여도 도벽이라고 하는 것은 그 그림자도 밟지 않도록 무서운 경계로서의 바른 초석을 단단히 세워주는 것은 그래서 꼭 필요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큰 도둑이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주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다 하는 것 같은 것,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주머니에 넣어 버리는 마음이 마중물이 되어서 결국에는 크고 작은 범죄의 물을 콸콸 토해내게 만듭니다.
또 비록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도 어디서든지 ‘훔친 수건’이라고 써있는 수건을 보았을 때에 마음이 편치 않게 됩니다. 그러한 것은 곧 밝고 명랑한 사회 분위기를 해치는 것에 일조합니다. ‘훔친 수건’ 즉 도둑질 한 물건이 여기저기서 발견되어지는 곳에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찜질방 수건 한 장. 대수롭지 않은 것이기에 들고 나올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듯 ‘대수롭지 않는 것이기에’ 놓아두고 나오는 것으로 나의 삶, 우리들의 생활의 터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찜질방 주인으로서는, ‘그깟 수건 한 장 얼마나 한다고-’ 하는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손님들의 손가방을 일일이 검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는 하지만, ‘훔친 수건’이라고 쓰여져 있는 수백 장의 수건들에게 둘러 쌓여있는 ‘훔치지 않은 사람들’은 과연 그 가운데서 몸과 마음의 피곤을 말끔히 씻어내는 즐겁고 상쾌한 찜질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생깁니다.
‘훔친 수건’ 이라는 ‘주홍글씨’를 선명히 두르고 돌아다니는 수건은 그것이 도둑질한 물건임을 고발하는 것이 분명하기에 ‘고발 수건’이라고도 할 수 있고 ‘신고 수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돌아다니는 수건 한 장도 고발의 모습으로 목청을 돋우며 손을 들고 나서는 모양이- 비록 작은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들의 삶터 한 부분을 점령하고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훔친 수건’이 단회성 해프닝이 되도록 힘쓰십시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