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방귀
목사님이 구역예배를 인도하면서 말씀을 전하는 중에 방귀를 뀐다고 하면 - 글쎄, 부덕(不德)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움으로 망가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최근에 들어 제가 그런 모양이 되고 있는데 고민이 많습니다. 문제의 발생은 한 삼 개월 전 병원 진료 중에 혈압과 혈당에 문제가 있고 당뇨도 좀 있는 것으로 판명되어 약을 복용하기 시작부터 입니다. 그 때부터 갑자기 시도 때도 없이 방귀가 풍풍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방약의 약전을 보니 복용 시에 나타나는 현상(부작용)의 하나로 ‘방귀’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충을 호소하는 저에게 의사는 웃으면서 참으라고만 하네요. “하지만 선생님, 저는 목사이고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를 집례 하는 것이 주 된 일인데, 조용한 예배시간에 뿡-하고 새어나오는 목사님의 방귀소리를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었습니다만, 꿀꺽 삼키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듯 ‘방귀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드디어 지난 주 구역예배 때 첫 사건이 터졌습니다. 우리 교회 구역예배는 주로 제가 가정을 방문하여 인도하는데 모임 때마다 10명 정도 됩니다. 엄숙히 말씀을 전하는 중에 풍- 하고-!! 아, 참으려고 무진 애를 썼건만 참 인력으로 되지 않는 것이 또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전례가 없던 일이라서 일까요. 모두들 일순 더 조용하여 졌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예배를 마쳤습니다만, 저의 이마에서는 진땀이 배어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어제 구역예배 때에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찬송하는 시간에 맞추어서 슬쩍 내 보내려고 노력 하며 갖은 애를 다 썼건만,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제 돌아오는 차중에서 놀리는 아내에게 “이거 안 되겠소. 차라리 성도들에게 공표를 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소...”라고 말하기도 하였는데, 가장 큰 문제는 방귀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신경이 쓰여서 말씀을 전하는 데 큰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도 가끔씩은 비슷한 상황이 없지는 않았지만 어지간한 방귀는 참을 수가 있었는데 이러한 ‘약부작용’으로의 방귀는 완전히 ‘열린 방귀’가 되어서 참을 수도 조절할 수도 없네요. 또 당뇨 약 같은 것은 한 번 복용을 시작하면 평생 또는 장기간 계속하여야 한다니 저의 고민은 깊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로 ‘방귀쟁이 목사님’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묘안이 있으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방귀 텃습니까?” 결혼 초기에는 서로의 자존심과 모양새를 지키기 위해서 ‘방귀’를 뀌지 않고 꾹꾹 참거나 또는 장소를 가리지만 한 몇 년이 지나면 이제는 서로를 개의치 않고 방귀를 풍풍 뀌는 사이로 발전(?)한다는 말입니다. 또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겠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혼 23년이 되고 큰 아이가 대학생이 되도록 아내 앞에서라도 함부로 방귀를 풍풍 뀌지 않고 지내온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소심한 것일까요? 예의바른 것일까요? (아내는 마음대로 뀌는데-) 그런데 이제는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풍풍 뀌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부부간에 ‘방귀가 트인 것’으로 저도 그 동안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 된 것일까요? 허허 참.
방귀는, 마치 코로 숨쉬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걸 맞는 자연스러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데서나 함부로 뀌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교육을 받으며 또 스스로도 부끄러운 것으로 알아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참는 훈련’을 반복하고 그 불편함과 괴로움을 기꺼이 감내합니다. 자연스러운 것에 대하여 인위적 조절을 감행하자니 무척이나 힘들고 또 신경이 쓰이는 것인데, 하나님은 왜 이렇듯 ‘방귀뀌는 구조’로 사람을 만드신 것일까요?
혹 사람의 공평함을 알리시기 위한 것일까요? 아무리 좋은 의관을 갖추고 높은 자리에 앉아서 절대와 엄숙함으로 하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졸지에 새어나오는 뿡- 소리는 그도 나와 똑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한 순간에 폭로하여 줍니다. 그런즉 나와 남을 구분하여 격을 달리 하는 것으로 교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긴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냥 자연스러움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렇게 수고하며 애쓰는 것으로 그 자연스러움을 막아보려고 하지 말고 말입니다. 허허
옛 자료들 속에서 보면 의원들이 방귀냄새를 가지고 환자의 속 상태를 알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또 지금도 복개하는 내과 수술 후에는 방귀가 나오는 것이 내장들의 자리 잡음이 ‘정상회복’이라는 신호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방귀의 역할은 웃음의 유발입니다. 방귀 뀌는 것으로 울거나 울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좌중 방귀로 인하여서 웃은 추억들은 많지만 울은 기억들은 거의 없습니다. 숨 쉬는 것처럼, 눈을 껌벅이는 것처럼, 걸어가는 두 다리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다른 것들과는 달리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은 방귀 이외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번 일을 계기로 배우는 것도 있습니다. ‘건강한 방귀’는 어지간히 참을 수 있지만, ‘부작용 방귀’는 - 그야말로 핫바지 방귀 새듯 생각 없이 새어나오면서 조절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쯤에서 “그러므로 심령이 건강한 사람이 무엇이든 오래 참고 인내한다.”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면 도대체 무슨 코미디언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어처구니성 방귀를 분사력으로 하여 일어날 사람들이 있을 것 같기에- 그저 속히 건강을 회복하여 약을 끊는 것으로 ‘방귀쟁이 목사’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사하는 것으로 글을 마칩니다. 하하 / 혈압, 당뇨 조심하시는 것으로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1-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