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가기 전날처럼
“소풍가기 전날처럼 살아라.”
제가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입니다. 소싯적 봄가을 때가 되면 학교마다 ‘소풍열풍’이 몰아 닥쳤습니다. 소풍 가기 전 날, 우리들은 소풍배낭에 김밥, 과일, 사이다, 삶은 계란 등을 꽉꽉 쟁여 넣고는 두근대고 설레는 마음으로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에는 두 눈이 부스스해져서 소풍배낭을 둘러메고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원래 소풍(逍風)이란 가벼운 나들이를 뜻하는 것으로 ‘산책’ 쪽에 가깝습니다. 영어로도 picnic 외에 Walking tour 라고도 하니, 분주하고 틀에 박힌 일상의 일과를 벗어나서 교외로 나가 좋은 공기로 심호흡을 하면서 심기를 재충전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학교 소풍, 가족 소풍, 동아리 소풍 등도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요. 말하자면 ‘안식’과 같은 개념이라 할 것입니다.
저의 때만 하여도 소풍을 ‘원족(遠足)’이라고도 하였는데 ‘멀리 걸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지 당시에도 어린 아이들이 걷기에는 힘이 부칠만한 거리를 줄지어 걸어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편안하게 대절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지요. 아무튼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어울려서 과자 따먹기, 보물찾기 등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열심히 뛰다 보면 하루해가 너무 짧았습니다. 상으로 받았기에 상(賞)자가 크게 찍혀있는 공책이며 연필 등을 배낭에 담아 가지고 와서 자랑스럽게 가족들 앞에 꺼내 놓던 기억도 있습니다. 좋은 시절, 아름다운 추억들입니다.
또, -사족이지만- 저는 어렸을 적 학교 조회 시간에 호명을 받고 나가서 교장선생님에게 상(賞)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큰 상 (미술우수상 허허)도 아니지만, 그 전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너 내일 상 받을 준비 하고 와라’는 말을 전해 듣고는 그날 하루를 즐거움으로 두근대는 마음을 품고 지냈습니다. 수백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앞에 나가서 상을 받을 생각을 하니 세상이 온통 아름다웠고 평소 보물처럼 여기던 딱지와 구슬을 좀 잃어도 별로 서운하지 않았으며 온통 ‘내일 있어질 일’에 대한 기대로 마음속에 기쁨이 가득하였습니다.
‘분명히 있어질 좋은 일 들을 생각하면서’ 매일의 삶을 살아간다면 바로 소풍가기 전 날처럼, 상 받기 전 날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됩니다. ‘기분 좋은 현재’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정해진 좋은 일, 즐거운 일을 앞두고 마음이 설레는 사람은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너그러운 마음이 되고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긍정적이 됩니다. 또 쉽게 짜증내지 않으며 화를 내지 않습니다. 장차 있어질 좋은 일들의 감동이 이미 앞서 그를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그러워지고, 온유하여지고, 베푸는 사람이 되는 것의 기초는 분명히 ‘즐거운 마음’입니다.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는 그렇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누구에게든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음이 괴로우면 얼굴에 나타나게 되고 웃음이 사라집니다. 깊은 근심과 괴로움을 가진 사람의 우울한 얼굴은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근접을 허용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쉽게 화를 내는 것으로 좌중의 분위기를 망치며 친구와 가족들을 괴롭힙니다. ‘즐거운 일의 기약’이 없기 때문에 한숨과 신세타령으로 나날을 지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나라를 기약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렇듯 더 할 수 없이 좋은 일을 앞두고 날마다 괴로워하며 산다는 것은 이상하며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사는 힘들고 지치게 하며 화를 내게도 합니다. ‘아무 염려도 없고 전혀 화를 내지도 않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날마다 그것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즉, 날마다 이전 것들을 털어버리고 새 힘과 새 마음을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 부동의 기초석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기약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희망과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땀을 흘리며 열심히 농사를 하는 것도 장차 풍성한 수확을 위함이며, 무엇이든 장사와 사업으로 분주히 오고 가는 것도 역시 장차 넉넉한 이익을 기대함입니다. 곧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좋은 일’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당장의 피곤함과 고단함을 이기며 살아갑니다.
농사이건, 장사이건 그 수고의 결과가 형편없으며 손해가 날 것이라고 정해져 있다면 누가 웃으면서 열심히 하겠습니까. 무엇을 하든 세상일은 몸도 마음도 힘들고 쉬운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없다면 삶의 의욕 역시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도 소망도 없는 사람이라면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사람에게서 무슨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예비 되어진 하나님나라를 생각하면서 ‘소풍가기 전 날처럼’ 기쁨 중에 즐거움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또, 무슨 공로이든 하나님나라에 쌓아놓는 것으로 받을 상이 예비 되어 있음을 성령의 음성으로 통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상 받기 전 날처럼’ 벅찬 감동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복 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