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족
미슬림피부비뇨기과 이세일 원장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 이제 제 아들과 딸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 아이들이 우리 부모세대에서 이루지 못하고 미루어진 일들을 잘 치르어 낼 수 있게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자신의 삶과 시대를 감당할 능력을 주시고 선한 의지를 주시옵소서.”
지난 주간에는 군대에 입대한 아들을 만나러 철원으로 갔다. 아직 군기가 바짝 들어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집에 있을 때는 무사 안일 나태한 삶의 모습으로 부모마음을 안타깝게 만들다가 군에 가고 나니 군생활의 엄격함을 잘 견디어 낼 수 있을 지 우리는 많은 걱정과 염려를 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런대로 국방부 시계에 맞춰서도 잘 살아가고 있었다.
유전자란 참 기묘한 것이다. 우리 아버지 할머니 사촌 형님들이 하던 행동을 일면식도 없는 나의 아이들이 할 때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말투며 행동거지가 우리 일가붙이들과 닮아 있으니 모처럼 만나 하는 행동들을 보면서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엽다고 하시던 옛 말씀이 생각난다.
성령님은 우리의 위로자이시다. 모처럼 만나 식사기도를 감사히 드리고 저녁을 함께 먹고 나니 “아버지, 함께 예배드려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과거에는 주일예배에 빼먹지 말고 늦지 말라고 매주 잔소리하는 것이 나와 아이의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였었는데 이 아이가 제 스스로 먼저 예배를 보자고 하니 너무 기뻤다. 저녁 간식을 먹고 한방에서 잠을 잔 후 아침 식사를 하고 나란히 교회에 앉아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니 삶의 기쁨은 바로 이런 순간들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게 되는 것이다. 점심 먹으러 가서도 오후 예배가 2시에 있으니 또 예배드리러 가자고 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시간되면 습관적으로 예배드리러 가던 저와 아들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전에서 충만한 위로를 받으며 오후 예배에도 은혜받게 하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목사님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예화로 설교를 하시는데 하나님께 온전하고 충성되게 봉사하지 못하고 교회 내의 체면의식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던 인간적인 얄팍한 삶의 태도를 나무라시며 회개할 것을 권유할 때에 많은 은혜를 받았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노라면 내 몸이 제일 소중하고 다음으로 가족이 소중하다. 내 몸이 아프거나 나의 가족이 고통을 받으면 가족들도 필연적으로 함께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너무나 복잡하고 뒤엉켜 버린 현대 사회에서 가족 간의 관계단절과 그로 인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표류하는 인생들은 또 그 얼마나 많은가.
과거 농경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던 시절에는 대가족 제도가 그에 대한 방어막으로 역할할 수가 있었다. 일찍이 인류문화를 도전과 응전으로 분석했던 석학 토인비는 지상에 현존하는 사회적 복지 모델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한국사회의 전통적 대가족 제도를 그 최선의 것으로 손꼽았다고 한다.
요즘 의사들과 보건복지부가 의료법 개정을 앞두고 건곤일척의 대승부를 벌일 기세이다. 국민의 정부 이후 사회적 안전망 확충을 위하여 정부가 많은 노력을 하고 상당한 성과물도 내어 놓고 있으나 한 사회의 특정직업군 전체에게 사회보장의 무거운 짐을 떠 넘기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이 의사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다.
우리 사회가 회복하여야 할 것은 이스라엘의 희년정신과도 같은 인류대가족주의를 회복하고 국수주의가 아닌 코스모폴리탄적 자유를 그 회복하여야 할 이상으로 간주하여야 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총칼의 힘이 약화되고 핵이 마지막 의지할 힘의 보루로 생각되는 자들도 있겠지만 선진강대국이 후진개발국을 도와주고 함께 살아나가야 할 지구촌의 형제로 인식하는 일이 또한 필요하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시오, 몸이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며 우리의 신앙은 일치 안에서 형제자매가 될 것을 꿈꾼다.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신령한 은혜는 선인과 악인에게 햇빛과 이슬비처럼 공평하게 이 땅에 내려오고 최후의 심판은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께서 마지막 날에 판단하실 일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역사 속의 교회이며 하나님의 교회는 새롭게 갱신되고 거듭나는 변혁의 놀라움을 이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교회가 아니라 베드로와 바울의 경우처럼 전적으로 헌신된 사도들의 교회가 오순절의 이적처럼 이 땅에 보여 져야 한다. 엘리 제사장의 시대처럼 이 시대는 이상과 기사가 희유한 시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사무엘의 시대를 기다리며 깨끗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걱정하고 계실 것이다. 확장된 대가족제도는 바로 천국의 모형이다. 교회안의 시력을 가진 자는 교회 안의 형제들을 돌보고 사회와 인류사회 전체를 보아야 할 자들은 그들을 위해 살아가야 하리라.
우리 형제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사명은 우리가 이루어 나가야 할 세계선교의 사명과 그 지향에서의 마지막 소실점이 맞닿아 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주님의 뜻을 따라 제자의 삶을 살려고 하는 우리가 형제요 자매라고 했으며 사도들은 손대접하기를 힘쓰라 그리하여 부지중에 하나님의 종을 대접한 자들이 있다고 권면하셨다.
21세기를 맞이하여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의 위대한 사명을 어깨에 걸머지고 나가려고 힘과 능력주시기를 하나님께 함께 합심하여 기도드리고 있다. 2007년 교회의 대변혁은 그 동안 핵가족 사회의 축복으로 주신 영양으로 우리 에너지를 산화시켜 다시 과거 우리가 살았던 대가족 제도로 섬김에의 유턴을 할 능력이 있는가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번 세 번 물으신다.
누구를 어디까지 섬길 수 있겠느냐. 언제까지 그들을 섬길 수 있겠느냐.
우리는 울먹이며 대답한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여 제가 제 자식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여 제가 주님의 교회와 교회에 속한 형제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시며 주님은 우리를 안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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