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거든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바이러스의 사회적 공포가 급속히 부상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의 순기능들이 삐걱거리거나 마비되어가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메르스의 의심, 음성, 양성, 확진 등의 판정은 물론, 감염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경로병원’의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 특히 상점주들의 피해호소가 날로 더하여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방이 어렵고 치사율도 높은데 치료제는 없다’는 작금의 진단이 갖가지 괴담성 루머들을 일으키며 더더욱 공포의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는데 이러한 와중에도 당면한 사회적 불안분위기를 이용하여 자신의 안위(安慰)만을 챙기려는 이들도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쯧- 그저 하는 말들... 이라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방역마스크와 소독용 손세정제 등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으로 품귀현상을 빚게 되니 물건의 확보를 위해 ‘웃돈거래’가 생겨나고 있다거나 ‘사재기’를 하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서는, 무언가- 아직도 우리는 요원한 지경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한 기분이 되기도 합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거나 바꾸는 것도 재주이며 기술이고 능력이라고도 하겠지만 위기도 위기 나름이어야 할 것이기에 이같이 약자 된 ‘불안한 이들’을 볼모로 잡는 것 같은 작금의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엊그제 어떤 백화점이 갑자기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경로백화점(!)이라는 소문이 나서 고객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는데- 조사를 하여 보니 그 백화점의 직원 한 사람이 ‘출근하기 싫어서-’ 일부러 퍼뜨린 소문이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일하기 싫어서-’ 회사에 자신의 메르스 의심 증상을 거짓으로 꾸며대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형태의 거짓말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싫어서, 성인들은 회사에 가기 싫어서, ‘알바’들은 쉬고 싶어서... 이유와 변명들도 여러 가지라고 하는데 그러한 대답들을 종합하면 어찌됐든- “일하기 싫어서...”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의 증가일로를 보면서-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는 ‘힘들어서-’입니다.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백방으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아무런 일자리를 얻지 못해서 ‘백수’로 지내는 젊은이들이 백만 명을 넘어섰고 감퇴, 명퇴, 은퇴 등의 이름으로 떠밀려나온 숱한 ‘나이 든-’ 사람들 역시 이전의 화려한 이력과 경력들도 다 접어놓고 ‘막벌이’라도 마다 않는 작금의 모양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을 눈앞에 보고 그들의 한숨소리를 생생하게 귀로 듣고 있으면서도 ‘일하기 싫어서-’ 거짓말을 한다고 하니- 혹시 이러한 직장품귀-취업대란의 현상을 이용하여 고용주들이 더욱 세찬 ‘갑질의 채찍’아래서 말 못하는 ‘을’들의 불쌍한 혹사가 생겨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그야말로 ‘게을러서-’입니다. 어떠한 경로로든지 게으름이 몸에 밴 사람은 아무리 쉽고 수월한 일도 귀찮고 힘이 든 법입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일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됩니다. 기회만 생기면 ‘놀고 싶어-’하는데 마침 ‘메르스가 베푸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거짓말을 하게 되고 심지어는 일을 꾸미는 것으로 본인도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거기에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엉뚱한 피해자들이 생기게도 됩니다.
언제부터인가 젊은이들 사이에- 탄식과 경계로서의 우리말 ‘덩더꿍이 소출’의 생활 모양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있을 때는 펑-펑- 쓰고 없을 때는 쫄-쫄- 굶는 것입니다. 어떤 사회학자는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을 ‘불확실한 미래’에 두었습니다. 즉, 안정되지 못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불안인데 오늘 날 우리들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노력과 열정과 수고에 대한 ‘정직한 대가와 보상’에 대하여서 의심을 품고 신뢰와 희망을 놓는다면- 이것은 메르스의 확산보다도 더 심각한 사회적 질병이며 불안사회를 만드는 먹장구름의 엄습입니다.
사람은 ‘일하는 동물’입니다. ‘일’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보면, “무엇을 만들거나 이루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써서 하는 인간의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써서 하는 인간의 활동’이라는 설명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몸을 움직이지 않고 머리를 쓰지 않으면-’ ‘활동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곧 ‘죽은 사람’입니다. 단순도식으로 정리하면 “일하지 않는 인간은 죽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성경에도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의 필연적 생존구조는 ‘먹어야 산다’ 것에 묶여있기 때문에 ‘먹지도 말라’는 것은 곧 ‘죽으라’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일하기 싫거든 죽어야 한다.”라는 말씀이라고 조금 더 적나라한 해석구(句)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저처럼 목사 된 이들에게 허락되어지는 것인지는 약간은 떨떠름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다시 또 성경에 보면 사람이란 일평생 “수고하며 땀을 흘리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엄히 확정되어져 있기에 ‘일하는 수고와 땀’은 곧 ‘생명의 현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역설이기도 하여서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죽음’을 피하여 ‘살아있는 복(福)’을 현재로 누리고 있는 모양이 바로 ‘일하는 모습’인 것이지요.
일을 하되- 꾀부리지 않고 정직함으로 열심을 더 하는 사람들이 모여 구성 된 사회가 ‘건강한 공동체’이며 건강한 공동체가 아니고서는 우리들의 육의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깨뜨리려고 공격해 오는 수많은 적들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만이 바이러스 같은 것들의 침투도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것에서, 작금의 메르스 국면은- 나와 우리가족과 우리사회가 나아가야할 향방을 지혜롭게 가늠하여 보는 유익한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단, 나태로 나아가는 ‘나쁜 기회’를 찾는 모양이 아니라, 더욱 건강하여 지는 ‘좋은 기회’를 찾는 모양으로 입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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