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의 부활을 보며
“오-! 주여 감사합니다.”
우리 몸 중에서 가장 혹사를 당하는 것이 ‘다리’라고 하고 그 중에서도 ‘발’이라고들 하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또한 ‘다리가 튼튼해야 몸이 건강하다’고 의사 및 모든 건강관리계통에 있는 사람들이 한 결 같이 입을 모으는데 저 역시 거기에 전적 동의를 하기 때문에 ‘차범근의 허벅지’ 와 ‘이만기의 장딴지’를 늘 부러워합니다.
지금 이 나이에 와서 조금 후회가 되는 것은, 사실 청년의 시절 운동을 많이 하던 때부터 ‘다리운동’ 보다는 상체 부풀리기 근육운동에만 매달렸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리는 별로 보이지 않지만 상체근육은- 특히 여름날 금방 두드러져 보이며 으쓱함으로 남자다움을 자랑하기 좋았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때에도 다리운동의 중요성을 늘 듣기는 하였지만 “다리야 뭐... 늘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잖아.”하는 마음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당시에 친구들과 함께 찍은 흑백사진들 속에서도 훌렁 벗은 상체 곳곳에 힘을 잔뜩 주고 몸을 부풀려 찍은 사진은 여러 장이 있지만 일부러 다리를 조명하여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랑스러운 상체’를 말없이 짊어지고(?) 다니던 다리가- 아니나 다를까! 자신에게도 관심 좀 달라고 투정을 부리고 데모를 하는 것이 분명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바로 ‘엄지발톱무좀’입니다. 엄지발톱이 누렇게 되고 두꺼워지고 부서지기 시작하는 모양이 점점 심화되기를 거듭하더니만 그냥 그렇게 일상이 되어 버렸고 지난 40년 가까이 그러한 보기에 흉한 엄지발톱 모양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것도 질환의 하나로서 ‘발톱무좀’이라는 것을 근자에서야 처음 알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다 그렇게 되는 줄만 알았으며 또 역시 늘 감추어져 있는 발이라서 그랬겠지요. 다른 이의 발이나 엄지발톱에는 일부러 관심을 가지고 애써 쳐다 본 적도 없고 제 발톱 역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내 온 것은, 우선은 아무런 통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사람은 ‘아파봐야 정신 차리는-’ 존재가 분명합니다. 아무튼 내 양쪽 엄지발톱에는 크게 신경을 쓰거나 관심을 주지 못하고 이날 이 때까지 살아왔기에 그저 제 발에게 많이 미안할 뿐입니다. 물론 한 때는 무슨 연고 같은 것을 바르기도 하였지만 그마저도 ‘있으면 바르고 없으면 말고-’ 하였으므로 어떤 효과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지내기를 이어 하다가 나이가 쉰을 넘어서면서 우연히 혹은 불현 듯 그렇게 나와 똑같은 모양이었던 내 나이 적 ‘아버지의 엄지발톱’이 생각났지만, ‘아하, 맞아 이것은 유전인가 보구나’ 하면서 역시 이제는 포기하여야 할 나이이지 하면서 이미 마음으로부터도 내려놓았고 더욱 내려놓으면서 생각하지도 않으려고 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발톱은 늘 깎아야 하는 일, 가끔 발톱들을 깎을 때마다 할 수 없이 들여다보기는 하였지만, 쯧쯧 하는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참 놀라운 일이 일어났지요.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양치하고 세수하고 주섬주섬 양말을 찾아 신다가 보니까 아-! 예의 그 누런빛이 거의 없어진 예쁘고 매끈한 나의 엄지발톱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흉하게 두터워졌던 발톱의 두께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아, 얼마 만에 보는 나의 잘생긴 엄지발톱인가-! 허허 감개가 무량하다는 말은 이런 때에 사용하는 말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거의 95% 이상이 정상으로 돌아온 모습이라서 한 참 동안 만져 보고 주물러 보았습니다. 그때 제 귀에는 ‘진작 좀 그러지-’ 하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아무래도 엄지발톱이 낸 소리였겠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회복이 된 것일까? 특별히 약을 바르거나 먹은 것도 없는데... 감사한 마음과 궁금한 생각이 동시에 앞 다투어 나옵니다. 이제는 환갑을 넘긴 나이인데 이렇게 자연치유의 모양처럼 회복 될 수도 있는 것인가...?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하나님께서도 모든 치유의 과정에 이미 세상에 만들어 놓으신 것들을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에 의사의 진단이나 투약의 과정도 있는 것이지요. 다만 저 같은 경우에는 발과 발톱에 대한 관심은 ‘아프기 전에는-’ 가진 적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 회복의 과정에 사용되어진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의 궁금증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지난 4년 전 즈음에, 당뇨가 약간 있다는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당뇨약과 혈압 약을 먹고 있습니다. 이제는 월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할 때마다 거의 정상수치로 잡히고 있어서 감사하며 다행인데 그 약효에 편승한 것일까? 혹 식생활의 개선 때문일까? 하긴 거창하게 ‘개선’이랄 것은 아니지만, 당뇨진단 이후로는 탄산음료 같은 것은 절대 먹지를 않고 지내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가리는 음식이 거의 없어서 아내가 정성들여 지어놓는 잡곡밥을 앞에 놓고서도 ‘하얀 쌀밥’이 그리워 시큰둥하기도 하였는데...
혹시 두유(豆乳)가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어 소화기능이나 몸의 모든 신진대사의 기능이 현저히 저하 된 사람들에게는 우유의 지방이나 칼슘도 오히려 해가 될 소지가 있으므로 우유보다는 두유를 드시는 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습니다.” 라고 권면 하였던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무조건 신봉하여 지난 3~4년 동안은 우유는 절대로 입에 대질 않았고 대신 두유를 하루에 두 팩씩 꼬박꼬박 마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유선전은 절대로 아닙니다. 허허.)
제가 그렇게 애용을 하다 보니 더욱 눈에 들어오는 것이겠지요. 한 30년 전만 하여도 두유라고 하면 ‘베지밀’이라는 이름으로 유리병에 담겨져서 시판되던 것 하나 뿐이었던 것으로 기억 되는데 지금은 수십 종류의 두유가 저마다 예쁜 이름을 가지고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어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한 참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 어떤 이에게는 우유가, 또 어떤 이에게는 두유가 좋겠지. 소젖이든 콩젖(?)이든 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만들어 놓으신 것이 아니겠어? 그야말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은 하나도 없고 해로울 일도 없는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수십 년 만에-” 라고 생각되는 지금에 와서 원래의 모양으로 회복되어지는 나의 엄지발톱을 지금도 들여다보면서 “내 발톱이 원래 이렇게 예뻤었구나...” 하고 속으로 흐뭇해 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지금 교회 마당에 피어 있는 ‘수선화’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 신화 속 ‘나르시스’처럼 되어서 ‘발가락 꽃’이라도 남기려는 것인가- 그래서는 안 되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우리가 세상에 남겨야 할 꽃이 있다면 ‘믿음을 뿌리로, 사랑을 줄기로 하는 은혜의 꽃’이어야 하겠지... 암 그렇고말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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