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이름 ‘세아’
“세상을 아름답게 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세아’라고 지었어요.”
이 곳 원주와 영월군의 경계에 있는 강원도 산골마을 우리 교회 집사님 댁으로 춘계심방을 갖는데 거기에 채 돌이 되지 아니한 손녀 아기가 있었고 이름이 ‘세아’라고 했는데 그 세아 아빠가 위처럼 이름의 뜻풀이를 해 주었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인물이 되라는 부모의 소망을 담은 이름 세아...
세상을 아름답게- 라는 말은 세상의 아름답지 못한 것들에게 날마다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속 염원의 명제라고도 할 것인데 그 속에는 작금의 이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지적하며 나무라는 책망을 담고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깊은 한숨과 탄식이 보태어진 그러면서도 차마 아주 내려놓을 수는 또 없는 마음의 소망을 가늘게나마 담아 내보내지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쉽게 바꾸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늘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연으로 볼 때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세상사(世上事), 곧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양으로 볼 때는 아름답지 못합니다. 끊임없는 시기와 다툼과 정복과 지배로서의 피 흘림이 곧 세계사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악함의 주역이 바로 어떤 동물도 외계인도 아닌, 지구의 터주대감 노릇을 하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를 일컫고 있는 ‘인간들’이며 바로 우리들(당신과 내가 포함되어 있는)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깜짝 놀라야 합니다. 어느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날마다 불태우고 무너뜨리고 망가뜨리는 것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지요.
날마다 ‘자연보호’를 외치기는 하지만,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지구전체의 자연환경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연구와 보고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동네 앞산과 마을 뒷산에 나무를 심어 좀 더 푸른 건강함의 모양을 잠시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잘라내고 베어내고 뿌리 뽑는 일들에 견주어 본다면 턱없이 부족하고 마치 파리들의 날갯짓처럼 미미합니다. 남극 북극의 빙산들이 녹아내리고 세계의 허파역할을 하고 있는 브라질의 삼림(森林)이 날마다 훼손되는 것을 아무도 막아내지 못합니다.
언제나 정글이며 밀림이고 사자들과 얼룩말들의 뜀박질 장이며 기린과 원숭이들의 놀이터 인줄만 알았던 아프리카 땅의 사막화는 점점 더 그 황폐함으로의 광활함의 지경을 날마다 넓혀가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내려다 본 아프리카 대륙의 사진들은 중간 즈음에만 푸른 녹색을 유지하고 있고 위 아래로 온통 황색 사막이 되어 있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자연이 파괴되면 당연히 각종 질병과 질환들이 일어납니다. 지금 심각한 사회문제 아니 세계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각 도시들의 ‘이산화탄소’ 발생과 방출의 문제입니다. 도시의 대기가 오염되고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종 질병에 노출되고 날마다 그 세(勢)를 더하여가는 위협의 엄습을 막아내지 못합니다. 그 중에는 서로의 국가적 협력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자국의 이익’이라는 당장의 실익만을 붙들고 양보와 협력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쯧- 하는 마음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나라들은 ‘지구 안’에 있으며 서로의 이웃으로 어쩔 수 없이(!) 붙어있습니다. 싫든 좋든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붙박이장’국가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국가의 위치나 이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땅덩어리를 뚝 떼어내어 태평양이나 대서양의 어디쯤으로 옮겨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웃으로 인한 피해도 감수하여야 할 것이 많은데 예를 들면 해마다 우리나라에 날아오며 국민 건강에 적신호를 보내며 그 심각성을 더해가는 중국발 ‘황사(黃砂)’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현상’이라는 말을 거듭하지만 바로 사람들이 그 대지의 사막화를 점점 더 가속화 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날로 더해지고 있습니다. 건넌방에서 불이 나면 안방도 풍전등화이며 그것은 이웃집, 이웃 도시, 이웃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고 하는 한 장소에서 붙박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 그리고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서는 곧 ‘세계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세계의 환경이 먼저 아름답게 되어지지 아니하고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세계인들의 행복은 있을 수 없고 생겨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망가짐보다 훨씬 더 우리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인간 심성의 사막화’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지 아니하고 품기는커녕 더욱 더 내팽개치는 극심한 이기주의의 팽배로 인하여서 우리들의 삶의 환경은 점점 더 나빠지고 위험해 지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우리 모두의 공멸로 나아가는 일인데도 말이지요.
사람들의 심성의 오염화는 지구자연환경의 오염의 확장보다 훨씬 더 빨라서 날마다 그 악행의 정도를 더해가는 것으로 나와 우리 가정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그러한 사회 범죄의 모양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수그러들 기미라고는 전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음의 간절함을 긴 한숨 속에 담아내며 ‘아름다운 세상’을 염원하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기의 이름도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아이가 되라고, 또 한편으로는 아이만큼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 더 나은 세상 더 안전하고 더 아름다운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소원하여서 이렇듯 ‘세아’라고 지어졌습니다.
오염을 더해가는 작금의 환경 속에 아이는 태어났지만 ‘천사의 미소’를 가지고 자신을 이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세아’라고 지어졌습니다. 아이를 축복합니다. ‘세아’가 자라나며, 가는 곳마다 또 있는 곳에서 세상을 밝게 밝히는 ‘빛’이 되고 또 아프게 하고 썩게 하는 것을 방지하고 치료하는 ‘소금’이 되기를- 그리하여서 ‘주변을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고 여전히 어두운 중에 있는 이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밝은 빛 가운데로 나오도록 인도하여 내는 귀한 몫을 잘 감당하는 아이 ‘세아’가 되기를 - 다시 한 번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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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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