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목하는 소리
“윙- 위이-이-잉--”
하는 소리로 이른 아침부터 마을의 정막을 깨뜨립니다. 벌목하는 기계톱 돌아가는 소리들인데 사실은 벌써 한 5년 전부터 늘 상 들어와야 했던 소리입니다.
“저렇게 다 잘라도 괜찮은 거에요?”
민둥산들이 되어가는 산들을 보며 아내가 묻는 말입니다만, 많은 이들의 한결 같은 물음이기도 합니다. 글쎄 난들 알겠는가?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다 생각이 있고 대책이 있고 조치가 있겠지... 쯧쯧. 그래서 어릴 적 생각이 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식목일만 되면 나무심기를 하라는 재촉에 가까이는 학교 뒷산에, 멀리는 광나루 근처까지 나무를 심으러 나갔던 기억도 있는데 모르기는 해도 그때는 전 국민들이 나서서 벌거숭이산들을 없애는데 발 벗고 나섰던 것이었지요.
그 후로 40년- 산들은 푸르러졌고 그렇게 심었던 나무들은 ‘잡목’이라는 이름하에 저렇듯 잘려지게 되었습니다. 듣자하니- 나무를 베어낸 산에는 새로운 수종, 수익성이 있는 나무를 심는다고 합니다. ‘수익성이 있는 나무’라면 한 마디로 ‘돈 되는 나무’라는 말이겠지요. 그래요. 뭐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돈이 되는 나무가 좋겠지요. 다만 나 어릴 적 그렇게 심었던 그 묘목들도 지금 그 자리에서 저렇듯 윙- 소리에 잘려나가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입니다.
아마도 그때 ‘우선 심고 보았던-’ 그래서 나무의 종류보다는 나무의 개수가 더 중요했기에 나무라고 생긴 모양의 것이면 무조건 심었던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이겠지요. 40년을 자랐지만 재목감으로는 별 용도가 없는 것이기에 저렇듯 그저 화목 난로의 땔감 정도로 차에 실려 팔려나가는 모습들입니다. 그렇게 사방으로 실려 가던 통나무들이 저희 교회 마당에도 겨울철 땔감용으로 한 차가 부려졌습니다.
저러한 모습들이 바로 - 저런 나무들은 대부분 건축의 자재 등의 용도로 사용되기에는 역부족인 것들이라는 말을 증명하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가끔씩 근처를 지날 때 보게 되는 제재소 넓은 마당에도 켜켜로 가득히 쌓여지는 것을 보면 대들보 감은 아니더라도 각목이 되든 널판목이 되든지 하여서 나름 용도를 찾아 쓰여 지게 되는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릴 적 심었던 나무들도 지금쯤은 어디론가 팔려가서 기둥이 되든가 서까래가 되든가 판자 담장이 되든가... 아니면 예쁜 강아지 집이라도 되었든가 그것도 아니면 활-활- 불살라지는 것으로 뜨거운 열기가 되어 추워서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온기를 전해주는 것으로 40년의 삶을 마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듯- 심겨지고 자라난 나무들 중에는 어떤 것은 쓸모가 없어서, 또 어떤 것은 쓸모가 있어서- 잘려집니다. 아니, 사실 쓸모가 전혀 없는 경우는 거의 없고 사람들이 요긴하게 사용하게 되는 곳에 쓰여 지는 것과 하찮게 쓰여 지는 것으로만 나뉘어 진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이겠지요. 목재(木材)와 땔감으로 라고나 할까요... 하긴, 이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겨울을 지내다 보면 ‘땔나무’가 얼마나 필요하고 요긴한 것인지... 결코 ‘하찮은 용도’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지요.
또 한 가지는, 백년의 위용을 자랑하는 것으로 요긴하게 쓰여 질 나무나 그저 잠시 후에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갈 나무나 그 ‘잘려지는 모습’은 한결 같다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즉, 재목(材木)으로든 화목(火木)으로든 상관없이 일단 ‘잘려지는-’ 고통은 똑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든 나무들과 거기에 열리는 각종 열매들 심지어는 들에 자란 곡식들이나 땅에 뿌리를 먹는 근채(根菜)의 모양들도 그 용도를 갖게 되기 위하여서는 그 있었던 곳과 자라던 곳에서 잘리고, 끊어지고, 뽑혀지는 수난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식물뿐이 아니라 동물들 역시 마찬가지라서 꽁치 한 마리도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밥상에 얹어지려면 ‘잘 놀고 있던-’ 바다에서 잡혀지고 죽여지고 토막이 나야 합니다. 소, 돼지, 닭 들이 마찬가지이고... 동물들끼리도 마찬가지이지요. 결국에는 모든 생명들이 서로에게 또 서로를 위하여 ‘희생’되어지는 것이 삶이며 또 싫든 좋든 ‘사는 목적’이기도 한 것이지요. 또 그러한 중에 가장 정점에 서 있는 사람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식을 낳고, 후대를 위하여 만들고 쌓아놓고 전쟁하고... 그리고는 죽는 것으로 세상에서는 물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점차 사라지지요.
저렇듯 잡목으로 나무들은 저 산에 30~40년을 서 있었습니다. 우리 사람들도 이 땅 위에 80~90년을 서있게 되지요. 언젠가는 싫든 좋든 윙- 하는 ‘세월의 기계톱’ 소리와 더불어 언제 서 있었느냐는 듯이 잘려지고 쓰러지게 되고 그 서 있던 자리 또한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다른 나무’들의 삶의 터가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왜 서있는 것일까...?”
이렇게 자문하여 보며 세상과 삶의 이치를 궁구하여 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저 왔다 그저 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어떠한 모습과 모양으로든 당신의 주변에 유익을 주고 사람이십니까? 때가 되어 잘려질 때에 기꺼이 아픔을 참아내며 잘려주는 사람 그렇게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삶으로 마름하였다는 이름들이 되시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기도 합니다.
산골어부 20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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