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와 불우이웃 그리고...
“춥고 배고픈...”
이라는 말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말일 것입니다. 물론 ‘겨울’이 있는 나라의 사람들에게 그렇습니다.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 그래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또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겪어보고 또 지금도 겪어 있는 것으로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것도 큰 고통이지만 추운 것은 그보다 더 큰 고통으로 견디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 ‘굶어 죽는’ 환경보다는 ‘얼어 죽는’ 환경이 사람에게 훨씬 더 가까이 있다고 하는 말은 겨울이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겨울이 되면 딸랑-딸랑- 구세군 자선냄비도 등장하고 여러 가지 형태로 ‘불우한 이웃을 돕자’는 사회 분위기가 일어납니다. 과연 여름보다는 겨울철에 더욱 그러한 것을 보면 역시 사람에게는 ‘추운 것’으로서의 고통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 중에서도 선두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추위와 배고픔을 자력으로는 이겨내지도 견뎌내지도 못하는 환경에 처하여 있는 사람들- 바로 ‘불우이웃’입니다.
‘불우(不遇)’라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불우의 ‘우’는 ‘만날 우(遇)’자를 쓰는군요. 그래서 ‘아니 불(不)’자와 나란히 선 불우(不遇)라는 말은 “만나지 못하였다.” 또는 “만남이 없었다.”라는 말입니다. 즉, ‘자신이-’ 필요로 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 기회, 때 등을 ‘아직까지는-’ 혹은 ‘아직까지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더 하여는 ‘언제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불우이웃’이란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사람과 어려운 사람들로서 경제, 건강, 가족문제 등으로 추운 겨울이 ‘더 추운’ 사람들입니다. 즉, 아픔, 고통, 궁핍, 질환... 등등을 ‘현재’로 끌어안고 있는 이들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더불어 살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선생님의 이 말씀을 아주 어렸을 적부터 듣고 자라났습니다. 또 그 실천의 방법 등을 배우고 행동하여 나가기를 종용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금의 어려운 국가 경제 살림 중에도 지난 세밑을 지나면서 구세군자선냄비에는 역대 최고액인 60여억 원이 모금 되었다고 합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우리 사회에 인정이 살아있고 온정의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한 해를 마름하는 연말이 되어서 저희 교회도 한 해를 결산하며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지나면서 하게 되는 마지막 교회일은 ‘불우이웃돕기’입니다. 년 중 언제나 무시로 상시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때와 날을 지정하여 정기연례행사처럼 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저희 교회는 당회가 없어서- 몇몇 제직들과 ‘준당회’로 모여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우리 교회가 도와야 할 이들의 이름을 천거하고 선별하고 돕는 방법을 정하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06:10)
그래서 우선은 교회 식구들 중에서 입니다. 상기한 형태로의 불우를 겪고 있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인데 아무래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즉,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로 초점이 맞추어 집니다. 그래서 이 분에게는 쌀을 넣어 드리고 저 분에게는 연탄을 넣어 드리고... 하는 것으로 그분들의 사정과 형편에 맞는 방법을 내어 보지만, 역시 전하는 이에게나 받는 이에게나 가장 좋은 방법은 성금을 담은 ‘봉투’를 전해 드리는 것입니다.
저 교회에는 50만원을, 그 교회에는 30만원을, 이분에게는 50만원을, 저 분에게는 30만원을... 하는 식으로 어려운 곳의 형편과 우리교회 형편을 잘 맞추어 조정을 하다 보니 몇 곳 몇 가정에 250만원정도가 배정되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수년 전만 하여도 매우 어려운 교회였었는데... 그 때를 기억하고 계셨던 것일까요? 안수집사님 한 분이 죄송한 표정이지만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저에게 가만히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몇 년 전 만해도 사례비를 몇 개월 동안 드리지 못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어려운 이들을 도우러 가게 되었고... 참 감사하지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요?! 근데 왜 저는 처음 듣는 일이지요? 쯧- 아마도 집사람의 선에서 삭여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긴 한숨이 나옵니다. 휴... 그래요. 언젠가- 교회의 재정 상태나 가정의 경제 상태에 대하여서 ‘어떻게든 둔하여 지는 모양을-’ 스스로 갖는 것으로 산골 목회를 가로 막는 ‘돈 걱정에 대한 부담’을 덜어 내기로 작정을 하고 그것을 아내에게 ‘가차 없이’ 통보한 적이 있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더욱 혀를 차게 됩니다. 쯧쯧... 어쩌라고... 어떻게 하라고... 이제는 지난 일이 되었지만... 아내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그렇게 드리는 성금을 담은 ‘봉투’가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들이 목회의 현장에는 많이 있습니다. 사별과 이혼 등으로 생겨진 고아 아닌 고아, 불치의 병, 봉합되지 아니하고 여전히 맺혀져 응어리져 있는 갈등과 원망의 일들이 주는 괴로움과 고통으로의 시달림 등입니다. 그러한 것들 중에 많은 것들이 내가 먼저 돌이켜 손을 내미는 것으로 고통의 불우(不遇)를 기쁨의 조우(遭遇)로 바꾸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전히 ‘불우의 상태와 모양’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을 보면 매우 안타까워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평안을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평안을... 모든 이에게 평안을...”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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