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준 교훈(敎訓)
어디에 숨어서 겨울을 나는 것인지- 따듯한 봄날이 되면 윙-윙- 거리며 나타나는 파리는, 사람들에게 매우 번거로운 곤충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환영하여 주는 이 없고 오히려 파리채, 끈끈이, 스프레이 동원하는 사람들과 쫓고 쫓기는 한 바탕 목숨을 건 추적전만이 기다리고 있으며 또 그렇듯 사람들에게 온갖 구박과 핍박(!)과 공격을 수시로 받기에 그야말로 ‘파리목숨’이 되어 휙- 바람을 가르는 파리채 아래서 한 순간에 ‘납짝떡’이 되어 마당에 던져지고 개미들에게 들려 나가는 장례식을 치르게 되기 일쑤인데도 그래도 여전히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시대를 넘어서며 왕성하게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해 못할(?)놈들입니다.
오늘-아침에 일어나 예배당 창문을 여는데 방충망에 파리가 한 마리 앉아있군요. 바깥쪽에서 앉은 놈이라서 잡을 수는 없고, 그저 쫓아버릴 양으로 방충망을 툭 쳤는데도 날개만 윙윙거리고 도망을 가지 않습니다. 몇 번 더 툭-툭- 쳐보아도 마찬가지이기에 눈을 가까이 하여 자세히 보니- 세상에! 파리의 머리가 방충망 그물코 안쪽으로 들어와 끼어있습니다. 허허, 처음 보는 장면이라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서 한 참 동안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떻게 그 작은 방충망 그물코 사이에 머리가 끼어있는 것일까.
저는 파리의 생태에 대하여서 아는 것이 거의 없기에 저 파리가 어떻게 무슨 일로 저렇듯 머리가 끼어져서 도망가지도 못하고 윙-윙-거리고 있는 상황에 이른 것인지를 유추하여 보기도 어렵군요. 다만, 어떻게든 안쪽으로 들어오려고 애쓰고 몸부림을 친 결과 몸은 들어오지 못하고 머리만 들어오게 된 것이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파리의 머리 형태나 구조가 어떻게 생겼고 또 되어 있는지는 그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도만을 저 역시 알고 있기에 이 장면을 보면서 파리의 머리도 앞쪽으로 신축성이 있는 것인가 왜 들어오기는 했는데 나가지는 못하고 있을까 매우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그래, 너 참 잘 걸렸다. 어디 고생 좀 해봐라.”
제가 너무 잔인한 것일까요? 사람이 원래 잔인한 것일까요? 그렇듯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 파리의 모양을 바라보면서도 일말의 자비심이라고는 전혀 생기지 않고 오히려 -
“바로 저 놈이 어제 저녁 밥상 위에서 윙윙 거리다가 밥에도 내려앉고 김치며 꽁치구이에도 내려앉던 그 놈이지, 암 그렇고말고- 또 왜 그 뿐이겠어? 지난주일 설교 중에 마이크 앞에서 날아다니면서 예배를 방해하던 놈도 저 놈이 틀림없어, 암, 그래서 지금 저렇게 벌을 받고 있는 거잖아-”
아무런 증거도 없지만 그간에 쌓아 놓았던 미운 파리들을 생각하며 마구 혐의를 씌우게 됩니다. ‘아니에요, 그건 무고(誣告)에요, 무고-!!’ 하고 외치는 파리의 목소리가 윙-윙-소리에 섞여서 들려오는 것도 같았지만 저는 “잔소리 마라!!” 휙- 찬바람이 일어날 만큼 고개를 돌려 외면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잊고 있다가 저녁 즈음에 문을 닫으려고 가보니 여전히 머리가 끼인 채로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툭-하고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쳐보니 이제는 의외로 쑥- 빠져서 바깥 풀밭 쪽으로 떨어집니다. 잠시 후에는 ‘사체처리 전문 장례위원’ 개미들에게 발견되어져서 어디론가 들려가겠지...
뭔가 썩 유쾌하지는 않은 기분이 드는데- 그것은 그 파리의 목숨 때문이 아니라 그 파리가 연출하여 보여준 ‘몸부림과 발버둥의 장면’에 대한 의미의 확장 때문입니다. 자신의 목을 조이는 것이 거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애써 머리를 밀어 넣으면서 ‘안쪽’으로 들어가려고(하였다는 가정 하에-)하였습니다. 그냥 밖에 있었더라면 저 푸른 하늘과 싱그러운 풀내음 가득한 곳에서 꽃과 나무들 사이를 마음대로 날아다니면서 맘껏 자유를 누렸을 텐데- 왜? 무슨 좋은 것이 있을 것 같아서? 들어오지 말라고 일부러 꼭꼭 막아놓은 방충망 근처에서 얼쩡거리다가 그 작은 틈으로 머리를 밀어 넣고서는 그렇게 죽어가는 것인가-
후-우-- 하는 긴 한숨으로 돌아 볼 때에 어떤 사람들의 모양도 이와 비슷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것도, 나의 공간도, 나를 위한 자리도 아닌 것이 분명하기에 닫혀있고 막혀있는 것을 애쓰고 힘쓰며 들어가려고- 차지하려고- 몸부림과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에는 그렇듯 그물코에 머리가 걸려서 스러지고야 마는 것을... 파리는 미물이라 하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물의 영장’이라고 날마다 외쳐대는 사람이 되어서 그렇듯 파리의 모양을 따라가서야 되겠는가... 그 파리 한 마리가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버려가면서(!) 나에게 보여준 ‘살리는 교훈(敎訓)’은 그것입니다. 허허 참.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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