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세월’호(號) 침몰
작금- 교회와 성도들은 고난주간을 지내고 있는데 거기에 끔찍하고 무거운 현재의 ‘고난’으로 더하여진 진도 앞 바다 침몰 여객선 ‘세월’호의 참담한 모양이 계속 TV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것을 보면서- 이곳 산골마을 속에서 무엇 하나 도와 줄 수 없고 그저 TV 만을 껐다 켜기를 반복하며 이곳저곳 채널 돌리기만을 계속하며 한숨만 토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며 착잡한 마음입니다.
여객선의 침몰- 처음에는 암초에 부딪힌 것으로 알려지더니 지금은 급히 방향을 돌리는 것으로 배가 중심을 잃으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는 것으로 의견들이 모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되었든지- 지금 가장 급한 것은 실종 된 3백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의 수색과 구조입니다. 구조대, 군함, 헬리콥터, 그리고 주변 어선들까지 이에 참여하고 있으며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고 찾아보고 있다는 보고는 이미 그 기대감의 생동을 잃은 것 같습니다.
주변에 없다면- 있을 곳은 한 곳 뿐으로 바로 침몰 된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것은 참으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참담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조대와 탑승자 가족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배가 뒤집어 지면서 형성되었을 수 있는 ‘에어포킷’에 기대와 소망을 걸고 있는바- 정말 그렇게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있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기원하고 기도합니다.
탑승자 대부분이 수학여행 중이던 ‘고등학교 2학년’ 남녀 학생들이라는 것이 더욱 더 바라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합니다. 생명이야 다 같은 것으로 노인과 젊은이 또 어린아이의 것에 대한 구분이나 구별 또 차별이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이제 십대의 아이들의 꽃봉오리 같은 삶이 그 시작점에서 채 피어보지 못하고 스러져 버리는 것이 아니기를, 제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한결 같기에 더욱 더 사건 현장을 보여주는 화면에서 그리고 들려오는 소식들에 대하여 눈과 귀를 떼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1000명을 태우고도 남을 수 있다는 수 십대의 구명보트는 모조리 쇠사슬과 자물쇠로 묶여 있어서 단 한 대만 작동되었고 거기에 가장 먼저 탑승하여 탈출한 이들 중에 그 배의 선장도 있었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사고가 났다면 그 모든 상황과 경위에 대하여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선장’일 것이 분명한데 조사 과정에서도 묵묵부답으로 일괄하는 모습이 TV에 비추어 지는 것을 보니- 선장된 사람도 자기 나름대로 답답하겠지만,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답답함을 넘어서 울화가 치미는 것을 참지 못하는 모양들입니다.
이러한 대형사고의 뒤에 늘 따라 붙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규정에 맞지 않았고 저것은 법을 위반하였고... 하는 이른 바 생명을 잃은 뒤에 나오는 ‘뒷북’의 소리들입니다. “설마...” “그 정도야 뭐...” “다들 그렇게 하잖아...”하는 마음의 태평한 소리들과 억지스런 당위의 도발에 대하여서 귀를 닫고 버스이든 비행기이든 여객선이든 그 속에는 두 번 가질 수 없는 귀중한 ‘생명’들이 있다는 것에 눈을 돌리고 또 그 속에 언제라도 나의 가족이며 아이들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 내 주머니를 불려주는 금전적 이익과는 결코 바꿀 수 없는 소중함들 이라는 이성과 양심에 이르게 되고 잠시 눈 먼 욕심이 불러일으키는 안전 불감증에서 해방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하여 이 일에 책임질 사람들에 대한 ‘엄벌’을 약속하였지만, 지금은 엄벌을 말할 때라기보다는 지금 바다 속에 수몰 되어 있는 생명들의 빠른 구조와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행정적 재발 방지의 대책, 그야말로 지금까지 해 온 것과 같은 입술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구태의 반복과 안전불감증에 대한 대수술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설정하는 혁신적 방향전환으로 이렇듯 늘 지적되고 있는 안일행정과 불감운영의 모습들을 완전히 퇴출시켜야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내 놓아야 하는 때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구조에 매달리는 구조대원들 노력과 고생으로의 수고가 헛되지 아니하여서 차갑고 어두움으로 깊은 곳 침몰선 안에서 수많은 생존자들이 발견되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푸른 하늘과 눈부신 태양 빛을 바라 볼 수만 있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의 모양이라고 할 것입니다. 아-!! 그렇게 되기를 그러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그래서 놀라움과 기쁨이 배가 되는 부활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그 탑승자들과 학생 아이들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그 배가 ‘세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바닷물 속으로 수장되어진 것처럼 악몽 같았던 수 일 간의 공포와 절망과 시달림의 일들이 모조리 ‘세월’ 속에 모두 묻혀버리게 되기를- 이 고난 주간의 극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날 오늘 금요일 오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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