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세... 97세...
허리우드 영화를 좋아했던 저는 그래서 서양 영화와 배우들에 대한 기억과 인상이 청년기 저의 삶 속에 많이 스며들어 있었고 또 어떠한 현재적 영향력을 가지고 저의 삶의 모양을 움직이기도 했으며, 나이가 든 지금도 그 영상의 한 자락들을 여전히 붙들고 있기에 가끔씩은 오래 된 명화 들을 찾아 돌려 보곤 하는 철없이 나이 든 ‘허리우드 키드’입니다.
지난 60년대 후반 즈음- 집에 흑백TV를 들여 놓고 ‘김일 레스링’과 외화 ‘전투’를 기다리던 시절을 얼마 지나, 당시 주말이 되면 방영하여주는 ‘주말의 명화’와 ‘명화극장’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짠-짠-짜자자짠- 강한 비트가 먼저 깔리면서 아랑페스 2악장 주선율이 포르테시모로 강하게 흐르며 시작하던 그 시간을, 역시 영화를 좋아하던 형과 함께 늘 기다렸습니다. 대개의 영화는 자정을 넘겼지만 중간에 잠든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이것도 “형제는 용감하였다”가 아닌지 싶습니다.
그때 그렇게 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레베카’에 대한 기억은- 영화 마지막에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집’ 밖에는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후에 고전영화들을 수집하여 보면서 새롭게 다시 보기는 하였지만 그때도 거기에 나온 여배우 ‘조안 폰테인’에 대하여서는 그저 히치콕 감독의 취향으로 잘 알려진 ‘금발미녀’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60년대 중후반 즈음- 한국 영화 팬들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었던 서양 여배우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소피아 로렌, 오드리 헵번, 데보라 커, 줄리 앤드류스, 브리짓 바르도,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등이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TV에서 ‘조안 폰테인’의 부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 영상들과 기억들이 순서 없이 떠오르며 새삼 ‘세월’을 생각하게 됩니다. 폰테인은 ‘히치콕의 뮤즈’라고도 불리면서 서양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타 중의 스타로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아-!! 그때 그 레베카의 여인이 아직도 살아있었단 말인가? 하고 놀랐는데- 향년 96세라고 합니다. 젊은 날에 그렇듯 유명세를 떨쳤던 아름다운 여배우도 늙어지면 어디론가 사라져 있다가 이렇듯 죽으면서야 다시 한 번 그 이름이 세상에 상기되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쓸쓸한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보도 뒤에 이어지는, 그의 언니로 같은 배우이면서 경쟁자였던 ‘올리비아 드 하비런드’가 아직도 살아있으며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금년 97세로 동생과는 한 살 터울이군요. 두 자매가 모두 헐리우드의 유명 스타 여배우였는데 또한 이렇듯 둘이 함께 장수의 반열에 올라 있었던 것입니다. ‘올리비아’는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자신의 남편역인 ‘애슐리’를 놓고 비비안 리와 약간의 신경전을 벌리기는 하지만 착하고 연약한 청순여인을 연기하였습니다.
1939년에 만들어져 1955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 되어진 그 영화는 여러 명의 감독들이 교체되는 우여곡절 끝에 ‘빅터 플레밍’감독이 완성시키게 되는데 당시에 ‘허리우드의 왕’으로 불렸던 ‘클라크 게이블’이 나와서 그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최고의 매력과 마력을 발산하였습니다. 지금은 좀 시들하여졌지만 한 20년 전까지만 하여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전 세계에서 상영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끈 최고의 명화였습니다. 70년대 이후로만도 한국에서 여러 차례 앙콜 상영을 하였고 그때 클라크 게이블의 매력과 비비안 리의 아름다움에 탄식처럼 긴 한숨을 내 쉬었던 관객들은 거의 모두가 백발로 나아갈 만큼 세월이 흘렀는데, 그 영화 속 주연배우 한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다니- 사람의 수명이 긴 것인지 명화의 인상이 깊은 것인지 턱을 고이게 됩니다.
두 자매는 젊은 시절 ‘스타들의 불화’로도 유명합니다. 폰테인은 히치콕의 유명한 스릴러 영화 ‘서스픽션’(1941)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Hold back the Dawn'으로 함께 후보에 올랐던 언니의 시기였을까요? 그 시상을 계기로 언니 올리비아와의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으면서 거의 자매의 연을 끊은 상태로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언니 올리비아 역시 ‘투 이치 히즈 오운 To each his own’(1947)과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공연한 ‘상속녀 The heiress’(1950 한국개봉명: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로 두 차례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동생을 향한 화려한 대반전을 이루어 냈지만, 여전한 자매들의 불화의 모습으로 ‘의절’ ‘불구대천지 원수’의 기사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세월은 지나고... 동생 폰테인의 죽음과 그를 슬퍼하는 언니 올리비아의 기사를 보니 그 동안에는 화해하여 잘 지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쯧- 모든 것은 그렇게 지나가 버리는 것을... 기사는 ‘두 자매’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만약 지금까지도 자매의 불화가 계속 되어졌다면 아마도 ‘두 할망구’라는 표현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96세...97세... 근 한 세기를 함께 살아오면서 영욕을 같이 하였던 전 시대의 아이콘들은 이렇듯 ‘죽음’으로 자신의 살아있었음을 알리고 있네요.
그래요... 세월은 모든 굳음과 미움도 그렇게 지나간 것이 되게 하고야 말지요.... 그리고 우리 모두 역시 그 지나감의 대열 속에서 부지런히 걷고 있지요... 낙담하고 있는 언니 ‘올리비아 드 하비런드’의 남은 날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3-12-26
파일을 업로드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