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 kill
한적한 시골길이나 산길 도로에 나타나서 배회하거나 혹은 도로를 횡단하거나 하다가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여서 죽는 동물들이 많습니다. 어제 부론면에 있는 ‘부론광야교회’를 방문하러 차를 타고 가다가 산길을 감아 돌아가는 중에 전방 도로 한 가운데 제법 큰 흰색 개 두 마리가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지나면서 보니 한 마리를 이미 피를 흘리면서 죽어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그 곁에 납작 엎드려서 경계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옆으로 자동차가 지나가도 피하지를 않았습니다.
그 두 개는 서로가 함께 지낸 사이라는 것을 한 눈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쩌다 도로에 나왔다가 한 마리가 차에 치이는 것으로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한 것 같고 한 마리를 그 곁을 저렇듯 지키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 개를 친 자동차의 운전자가 개의 사체를 수습을 하여 놓고 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긴, 그 개들의 제법 큰 덩치와 경계하는 눈빛 때문에 옆에 있던 아내는 크게 겁을 먹었고 저 역시 쉽게 자동차 문을 열고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사고를 생각했습니다.
이름 하여 로드킬(road kill)의 희생자들은 주로 개, 고양이, 산토끼, 너구리, 고라니 등입니다. 특히 고라니들이 사고를 많이 당하는 것 같습니다. 새벽과 저녁 길에 도로 한 가운데서 죽어 있는 고라니의 사체를 길 한 쪽으로 치워 놓은 적은 두어 번 있습니다. 그 때도 한 번은 새끼로 보이는 또 다른 고라니가 그 죽은 고라니 주변에서 계속 서성거리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안전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보는 새끼고라니에게 “너 이제 어떡할 거니? 나 따라 갈래?”하는 부질없는 말을 걸어 보다가 훠이-훠이- 도로 건너 편 산기슭 쪽으로 쫓아낸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잘 살고 있겠지요... 쯧-
제 차가 다가가도 크게 움직이지 않고 엎드린 채로 죽은 개와 자동차를 번갈아 바라보던 개의 슬픈 눈의 기억이 쉽게 잊혀 지지 않습니다. 죽은 개가 어미였을까요? 형제였을까요? 친구였을까요? 두 마리의 겉모습이 거의 같았던 것을 보면 아마도 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벌써 죽은 개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던 것 같았는데 그 다른 개는 지금도 죽은 개의 옆에 엎드려 있을까... 결국은 도로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와서 사체를 치울 텐데- 그러면 그 개는 혼자서 제 집으로 돌아가겠지... 어쩐지- 한 동안은 웅크리고 누워서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함께 지내던 이의 죽음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큰 비극입니다. 이제 다시는 나와 함께 걷지도 뛰지도 못하고...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함께 무엇을 먹을 수도 없고... 사람의 경우라면 풍습에 따라 수습을 하고 장사를 지내게 되지만, 저러한 개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그 살아있는 개 앞에 더 이상은 끔찍하고 상처가 되는 장면이 펼쳐지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차에 치어 죽은 개를 어떻게 하였다, 죽은 고라니를 어떻게 하였다 하는 말들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동물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 나라의 사람들의 민족성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은 간디라고 하는데- 저 역시 염려함과 두려움으로 인하여 차에서 내려 그 사체를 치워놓지도 또 그 불쌍한 개를 쓰다듬어 주지도 못하였기는 하지만... 누구에게 이든, 어떠한 형태로이든 따듯한 위로를 받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길 위에서의 사고와 죽음... 사람도 아닌 한 마리 ‘개’이기에 어떤 절차도 바랄 수 없고 또 누군가를 향하여 어떤 권리도 주장 할 수도 없기에 저렇듯 피 흘리며 죽어있는 친구 개 옆에 웅크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는 ‘슬픈 개’와 그 옆을 쯧-쯧- 혀를 차면서 그냥 지나쳐가는 저와 같은 사람들... 오늘... 이렇듯 겨울 초입의 추운 날씨 속에서 더욱 목을 움츠리게 되는데 단순히 더 내려간 수은주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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