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찾은 향기
“좌르륵---”하고 가림막 커튼이 열려지면서 들어온 군의관과 간호사들이 병원 침대의 주변에 죽- 둘러섰습니다. 그 가운데는 각종 주사 바늘을 5개나 몸에 꼽고, 또 산소호흡 마스크를 쓰고도 호흡이 되지 않아 심하게 몸을 뒤틀면서 물에서 막 건져 올려 진 생선처럼 펄떡거리는 제가 있었습니다.
“아, 나는 이렇게 스무 살을 막 넘기면서 죽는 구나-” 하는 생각이 딱성냥을 그어대는 것처럼 화들짝 떠오르면서, 늘 풍성함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던 그 많던 공기는 다 어디에 있는가 하는 생각이 저를 더 숨 막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게 되었을 때는 지나온 일들이 어지럽게 뒤 섞인 것으로 한 순간에 떠오른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때 내 앞에는, 앞 뒤 없이 마구 뒤엉킨 지난날의 영상들이 저마다 먼저라고 손을 들고 뛰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어머니 얼굴... 성탄절 때 교회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하던 어릴 적... 입대할 적에 머리를 박박 깎고 어쩐지 우울했던 모습... 눈 오던 날 이웃동네와 전쟁놀이... 옷핀으로 찍어 먹던 리어카 좌판 위에 해삼... 형 몰래 감춰 놓고 꺼내 입던 청바지... 어머니가 ‘엄마’일적에 쪄주시던 들통찐빵... TV로 보았던 엘비스의 하와이 공연... 친구들과 마장동 저 너머로 고기 잡으러 가던 일... 등등이 뒤죽박죽 순서도 없이 형 동생 친구들의 얼굴들과 뒤범벅이 되어서 주마등처럼 돌아갔습니다.
.... 그때 그 ‘숨 막힘의 몸부림’ 기억이 지금도 나의 삶의 일정 부분을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요? 어쩌다가 인근 냇가에 가서 아이들과 천렵(川獵)을 할 때면 그물에 걸려 올라와서 펄떡거리며 모래와 바위틈에서 몸부림을 치는 메기며 쏘가리 또 피라미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모두 다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 됩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록 각각 다르기는 하겠지만, 분명히 하나쯤은 소중한 체험과 기억으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도 역시 사람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는 - 위의 내용처럼 ‘숨 쉬는 소중함을 알게 된’ 것으로서의 깨달음입니다.
아- 벌써 30년도 더 넘은 육군 졸병시절 급성 ‘신증후군(네프로신드롬)’이라는 병명을 가지고 긴급후송차에 실려 여기저기 다니다가 결국은 서울에 있는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실려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한 이틀 지났을까요, 정말 지옥을 경험하게 하였던 그 날 밤을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바로 곧 죽을 것만 같은 심한 ‘호흡곤란’으로 위의 장면 그대로 입니다.
‘평생감사’라고 하는 것은 평생 동안 감사를 계속하여야 하는 것들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저는 당연히 ‘숨 쉬는 행복함’에 대해서 입니다. 아- 그 때의 ‘숨 막히는’ 경험 이 후로 알게 된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름하는 ‘숨 쉬는 것’에 대한 소중함 입니다. 그래서 심중에 눈이 밝아져서 돌아볼 때에 지금도 놀라게 되는 것은, 내 옆에서 나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이 마음껏 자유롭게 숨을 쉬며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앞에 펼쳐져 있는 무한 공간을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들 하면서 아무런 가치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죽음의 목전에서 몸을 뒤틀어가면서 숨쉬기를 원했던 절체절명의 순간을 체험해 본 저에게는 그 무한한 공간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아니라, 나를 살게 하는 것으로 빈틈없이 채워진- ‘꽉 찬 공간’입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날마다의 삶을 ‘텅 빈 공간’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감격할 일도 감사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날마다의 삶을 ‘꽉 찬 공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당연히 감사할 것과 감격할 일이 넘쳐 납니다.
‘금방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절체절명’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숨 쉬는 즐거움’을 푸른 하늘을 끌어안는 것 같은 행복함으로 느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렇듯- 이 세상에 텅 비어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고 어디를 가든지 ‘우리를 살게 하는 것’‘공기’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는 어제도 오늘도 ‘마음껏 숨 쉬며 살았고’ 내일 숨 쉴 일을 염려하여 산소통을 따로 준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일도 역시 ‘마음껏 숨 쉬며 살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조용히 턱을 괴고 생각해 보면 이것은 참으로 무섭고 두려우며 가장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자칫 ‘죽고 사는’ 문제로 우리 코앞에 내밀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계획할 때에, 전라도에 가면 숨 쉴 수 있을까? 제주도에 가면? 일본에 가면? 미국에 가도 숨 쉴 수 있을까 염려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한 것은 계획에는 물론, 안중에도 없습니다. 왜입니까?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당연한 것을 당연히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당면하여서 ‘생각하며 살아가는’ 모양의 균형을 잡았습니다. 세상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자유롭게 마음껏 호흡할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서의 삶의 재발견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 사람이든지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사람이든지간에 상관없이 그들의 생명을 아무런 차별 없이 지금도 살려 놓고 있는 것은 어디를 가든지 ‘꽉’ 차있는 공기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감사의 눈으로 볼 때,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은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는 - 모양도 냄새도 없는 공기가 가득합니다. 그 또한 다행하게도 지금까지 무한 공급이며 무료 공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살리는 것’이 가득한 중에 서서 ‘죽겠다’를 연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모든 욕심과 완악함을 내려놓고 겸손하고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소중히 알고 지내야 할 이유로서 충분하지 않습니까?
산골어부 201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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