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 민족대이동
오늘날 우리 한국의 ‘추석 민족대이동’은 ‘고향을 찾는 민족대이동’입니다. 추석 명절에 약 2천 만 명이 이동을 한다는 보고도 있고 보면 4500만 우리 민족의 절반 정도가 움직이는 것이니 과연 민족대이동이 맞습니다. 저는 ‘민족대이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중고등 학생시절 역사시간에 배웠던 ‘게르만 민족 대이동’이 생각납니다. 당시 -어쩌면 지금 한국인들의 조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연구와 주장이 있는- 훈족의 침입을 계기로 유럽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면서 유럽인들의 삶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유럽인들에게는 외부의 적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대이동’이었는데 이렇듯 타민족의 대이동을 만들어낸 이들이 우리 대한민국의 조상들이었다면- 과연 우리는 해외진출로서의 대이동에 일찌감치 익숙하였던 이들의 핏줄을 이어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렇듯 매년 민족대이동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요? 허허
사람들은 왜 고향을 찾는 것일까요? 하고 묻는다면 세상에서 그것처럼 못나고 무식한 물음은 달리 없을 것이라 할 것입니다. “고향은 고향이기에 찾는 것”이라는 대답 외에 다른 무엇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과도 같고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추우면 입을 것을 찾는 것과도 같습니다. 즉, 고향은- 세상의 시달림에 대한 고단함을 만져 주고 덜어 주며 따듯함으로 반겨 주기 때문입니다. 즉, 편안함을 주고 위로를 주며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하고 지쳐있는 이에게 새 힘을 주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젠... 고향에 가봐야 누가 있어야 말이지...” 하는 말들이 말하여주고 있는 것처럼 ‘고향’도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반겨 줄 이가 있을 때에만 ‘고향’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곳, 일가친척과 어릴 적 친구들이 최소한 한 두 명쯤은 여전히 있는 곳이어야 가고 싶은 고향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는 점점 도시화 되어가는 구조 속에서 ‘고향땅’은 있지만 ‘고향’은 없는 이들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비록 내가 태어난 땅이요 자라난 곳이라고 하여도 나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기억도 없는 낯 설은 이들만이 있는 곳 그래서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도 반겨 주지도 않는 곳이라면 외로움만 더하여 줄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는 찾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할 때에 어쩌다 오가는 길에 그냥 지나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고향땅을 찾은 사람에게는- 그저 내 어릴 적에 익숙하였던 이런 저런 장소의 축소된 것 같은 모습들과 내 발자국이 아직도 새겨져 있을 것 같고 어쩐지 나를 기억하고 반겨 줄 것만 같은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가끔씩은 그 그늘 아래서 쉬기도 하고 또 기어오르기도 하였던 마을 어귀에 여전히 서있는 오래 된 느티나무 고목을 향한 나만의 정겨움이 있을 뿐입니다.
“에이- 나는 왜 고향이 서울이지-?!!”
온 가족이 함께 고향을 찾아 나서는 친구들의 모습을 정겨움과 부러움으로 바라보았던 어린 시절의 저의 푸념이었습니다. 시골이 고향인 친구들이 부러웠고 그들이 입술에 연신 침을 발라가면서 해 주던 이야기처럼 저도 논밭을 다니며 메뚜기도 잡고 개천에 가서 멱을 감고 미꾸라지며 붕어도 잡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고, 지고, 데리고 고향 길을 찾아나서는 - 거기에 함께 따라 나서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사실 명절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는 다고 하는 것은 매우 수고로우며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또한 참으로 아름답고 훈훈한 장면이기에 그렇듯 발품을 팔며 찾아 나설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육신의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은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래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되어지기는커녕 어쩐지 쓸쓸함으로 다가오는 마음의 허전함만은 감출 수가 없다고들 합니다.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 사는 사람- 그래서 굳이 시골길을 찾아 나설 곳도 필요도 없는 사람들 중에 멀찐 멀찐한 표정으로 민족대이동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물고 서있었던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세월은 고속열차 달리듯 하여 이제는 서울을 떠나 온 지 30년 가까이나 되기에 가끔씩 ‘내 고향 서울’을 찾아가서 내가 자라고 살았던 흔적을 찾아가 보고 싶기도 하지만 수년 전 어찌 어찌 그곳을 잠시 지나다 보니 이제는 아는 이들도 없고 나의 어릴 적 모든 추억과 흔적을 담아가지고 나를 반겨 주어야 할 ‘서울 고향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주차장이 떡- 하니 들어섰으며 친구들과 뛰어 놀던 ‘우리들만의 골목길’도 대부분 넓고 환한 신작로로 변해 버려서 끙- 하는 신음소리로 아쉬움을 남기면서 돌아섰던 기억이 있기에 내고향 서울을 향한 애틋함은 많이 빛바래졌습니다.
고향이라고 하면 - 역시 시골 풍경이 제 격입니다. 산과 들이 있고 집 앞에 실개천이 흐르며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리는 대문으로 들어서면 흙 마당이 있고 저 만큼 쯤 장독대에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몰려 있으며 휘- 돌아보다가 금방 걸터앉을 수 있는 반질반질한 쪽 마루가 있어야 고향 그리고 고향집이라는 이름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저 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이 해마다의 변화무쌍함에 시달리는 도심 속 어느 골목을 고향의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그러한 면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나마 도심 골목 속에서라도 눈에 익은 ‘낡은 블록 담장’의 한 편이라도 발견하는 것으로 정겨웠던 옛 추억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다행입니까. 지금도 멀리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어 쉬는 것으로 시름을 달래고 있는 실향민들을 생각하면 그래서 더욱 안쓰러운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누구나 고향은 있고 모두가 그리워하지만 또한 모든 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름하면서 조용히 고향에 묻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고향(故鄕)이 있고 그 곳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있다면, 이제는 누구라도 예외 없이 그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서 가야할 곳 본향(本鄕)을 생각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종국에는 그 곳에 묻히고 싶어 하는 것처럼 우리는 본향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타지(他地)에서 죽은 사람을 객사(客死)하였다고 하며 혀를 찹니다. 잠시 살다가 스러지는 육신의 자리도 이와 같이 종국의 자리가 구분 되어져야 하는 것이라면 영원히 죽지 않을 영혼의 자리는 더더욱 명백히 구분되어져 합니다. 성경에서도 명백히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의 삶’의 모양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것이 지나갔고 또 지나갈 것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거기에 속하여 있습니다. 잠시 주어진 시간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들의 행색이 간편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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