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 서비스 센타로 가겠는가...
지금 일본에서 흥행 몰이를 하고 있다는 영화 제목이 ‘덴데라’입니다. 일본판 고려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영화화 한 것으로서 아직 우리나라에 수입이 되지 않았지만 우리도 고령화 노령화 시대를 맞이한 만큼 들여 올 것으로 보여 집니다. 영화 ‘덴데라’는 그 전해지는 내용만으로도 가슴을 울리고 우리들의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여 보게 합니다. 영화는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는 데 아래는 기사 일부입니다.
“최근 일본에서 일본판 고려장(高麗葬)을 그린 '덴데라'라는 영화가 개봉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70살이 되면 부모를 눈 덮인 산에 버렸다는 가난한 마을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산에 버려진 노파(老婆)들이 힘을 모아 덴데라라는 마을을 만들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야수의 습격에 맞서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이다. 노파들의 생존 본능을 자극한 것은 자신을 버린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복수이다.
이 영화는 출연배우들도 노인이다. 한때 젊음과 미모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일본의 국민여배우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출연기회가 뜸했던 노배우들이 오랜만에 주연으로 다시 등장했다는 점도 화제다. 근본적으로 이 영화가 일본 사회에 큰 울림이 있는 것은 고령화 사회 일본 노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메시지는 "힘없고 늙었다고 우리를 버리지 말라"는 절규이다.
일본은 고령화가 본격화하면서 죽은 지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고독사(孤獨死)가 연간 1만5000건이 넘고, 죽어도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없는 무연사(無緣死)가 연간 3만2000건이 넘는다. 지난해에는 자식이 부모의 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부모의 시신을 백골(白骨)이 될 때까지 골방에 방치한 사건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장수(長壽)대국' '노인복지대국'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러나면서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우울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기사 중에 특히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다는...”이라는 구절입니다. 누구나 장수를 원하고 또 장수를 빌어 주는데 바로 그 장수함이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시선과 생각은 깊은 한 숨을 쉬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결코 바다건너 이웃나라에 국한 된 이야기가 아니며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일이 되었기 때문인데 과연 우리도 ‘저주의 고령화 사회’로 가야만 하는 것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1-2위를 다투는 경제대국이며 그 만큼 사회복지도 잘 되어있고 따라서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시작된 고령화 사회에 대한 연구와 대비책이 잘 세워져 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듯 어떻게 반전을 시킬 수 없는 사회문제로 점점 더 커지고 심각해지고 급기야는 ‘저주의 고령화’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일까요? 돈으로도 되지 않고 제도나 정책으로도 되지 않는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요.
오래 산다는 것의 문제점은 ‘젊은이’로서가 아닌 ‘늙은이’로서 오래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벌써부터 지적되어 온 것으로서 노인은 ‘생산’은 없고 ‘소비’만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전 시대에 충분히 뼈가 녹도록 일을 하였고 지금 세대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장만하여 놓은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후세들은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잘 모시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러나 여기에도 차마 입으로는 하지 못할 이율배반의 사회적 원리와 논리가 있습니다.
‘고령화’ 문제가 이렇듯 자꾸만 사회문제로 점점 더 크게 불거지면서 나중에는 거대한 공룡같이 되어 위협할 때를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점잖게 ‘생산은 없고 소비만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조금 있으면 ‘일도 하지 못하고 놀기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중에는 ‘없어져야 할 사람들’이 되고 급기야는 ‘빨리 없애야 할 사람들’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장차 고수익 사업으로 ‘고려장 서비스 센타’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이 극진한 효도의 표현이었지만 이제는 건강하든지 병들었든지 상관없이 오래오래 사는 것 자체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리기 직전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건강하게 적당히 사세요.”라고 인사 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부모님이 오래 사는 것으로 인하여서 인륜의 근본부터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면 과연 말세가 온 것이라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도 크게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백세인생’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 모든 법과 제도 그리고 교육과 정책 또 사회의 풍속도까지도 새롭게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려운 문제의 산적함이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우리의 부모님들’의 평안한 삶을 위해서 연구하여야 합니다.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길에 들어서는 첫째 조건은 ‘나의 몫’을 더욱 내려놓는 것입니다. 고통의 분담으로 나의 삶에서 ‘우리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영화 제목 ‘덴데라’는 이집트 나일강서안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이름입니다. 그 곳에는 여신 ‘하트호르’를 섬기는 ‘신전 덴데라’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 집니다. 이집트의 비너스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 하트호르는 사랑 기쁨 풍요를 상징하고 관장하는 여신입니다. 영화 속 노인들이 자신들이 세우는 ‘생존마을’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 것으로도 그들이 원하고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샹그릴라’라고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마도 기막힌 현실의 닦달함으로 버려진 무력함과 지나간 세월 속에서 모든 헛된 결론을 읽어버린 늙은이들의 망가진 몸을 가지고 영원과 불사를 염원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찼었나 봅니다.
오래 산다는 것으로 내 몰리는 노인들을 보고 안쓰러움으로 혀를 차지 마십시오. 바로 내가 잠시 뒤에 그 멤버가 되는 티켓을 가지고 - 나의 늙어짐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 순서를 기다리며 서있는 ‘예비 된 노인’입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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